복지 늘린다더니… 저소득층 ‘시름’

입력 2012-10-02 18:40

정부, 8월부터 14만명 복지급여 지원 중단

“내가 죽은 뒤 아내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9일 김모(68)씨는 잠시 머물던 요양병원 병실의 방충망을 뜯어낸 뒤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창문 옆에는 6년 전 치매시설에 입소한 아내의 생계를 걱정하는 유서가 놓여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살던 김씨는 부양의무자인 자녀의 소득이 ‘적발’된 뒤 지난해부터 정부 지원금이 끊겼다. 병든 아내마저 수급자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 같은 사연은 드문 게 아니다. 지난 8월에는 부양의무자인 사위의 월급이 인상되면서 수급자에서 탈락한 78세 할머니가 경남 거제시청 앞에서 제초제를 마셨다. 2월에는 경남 양산의 지체장애 남성이 자녀의 소득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하자 집에 불을 지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난해 7월에는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뒤 자녀에게 짐이 될 것을 고민하던 70대 노부부가 노인요양시설에서 동반 자살했다. 2010년에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가 장애를 가진 아들의 병원비를 대지 못하자 “나 때문에 아들이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며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기준 이하일 때에만 저소득층에게 생계급여 등 수급자 자격을 준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 도입 이후에는 오래 연락이 끊긴 가족의 소득이나 일용직 노동 수입까지 통계에 잡히면서 수급 탈락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사실은 정부 통계로도 확인된다.

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올 상반기 복지급여 확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및 재산 기준을 초과한 각종 복지제도 수급자는 13만9760명(9만9117가구)이었다. 복지부는 당장 8월부터 이들에 대한 급여 지급을 중지했다. 이 중 기초생활보장에서 배제된 인원은 3만8086명으로 가장 규모가 컸다. 이어 영·유아 보육 2만5431명, 차상위 본인부담경감 2만1481명, 한부모지원 2만886명 순이었다. 이렇게 정부가 아낀 예산은 연간 3383억원이다. 올해 수급 탈락자는 지난해보다 4500여명 늘었다.

수급자 관리 강화는 즉각 극빈층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올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40만9684명으로 8년 만에 최저점을 찍었다. 수급자 수는 2009년 156만8533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0년 154만9820명, 2011년 146만9254명을 거쳐 올해 140여만명까지 3년 연속 하락했다. 그렇다고 절대 빈곤층이 감소하고 있는 건 아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은 전체 가구의 24% 정도가 2005∼2009년 한 차례 이상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발표했다.

논란을 의식해 최근 복지부는 내년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수혜대상을 약 3만명 정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렇게 확대된 2013년 예상 기초수급자는 143만명으로 2004년 수준에 불과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은 “빈곤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왔지만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부 발표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