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롬니가 밀리는 이유

입력 2012-10-02 21:34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의 판세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쪽으로 기운 느낌이 역력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정통한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최근 선거예측기관이나 전문가 중에서 공화당 밋 롬니 후보의 승리를 예측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한 미국인 한반도 전문가는 롬니의 ‘47%’ 발언을 계기로 “선거는 이미 끝났다(it’s done deal)”고 했다.

개인적으로 롬니 진영의 패착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거 전략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권한 롬니의 필승 전략은 선거를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심판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심판론의 핵심 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문제. 유권자들에게 ‘4년 전보다 살림살이 나아졌나요’라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6∼7월 오바마 캠프가 롬니의 세금 납부 및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하는 등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면서 롬니는 주도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8월 롬니가 부통령 후보로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을 선택한 것은 선거 전략의 혼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라이언 의원은 재정지출 대폭 감축 등 ‘작은 정부’를 주창해 온 공화당 매파 중의 매파다. 그는 고령층 건강보험제도인 메디케어를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라이언의 등장으로 선거의 초점이 오바마 경제 실정에 대한 심판에서 메디케어 등으로 옮겨가는 게 불가피했다. 재원 부족이 예상되는 메디케어의 지속을 위해 미래의 은퇴자에게 바우처를 지급해 민영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겠다는 라이언의 제안은 정치적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불명확한 집권 청사진 역시 롬니의 큰 약점이다. 지난달 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설파했듯 롬니의 공약은 ‘산수’가 안 맞는다. 재정 적자를 줄여 균형 예산을 만들겠다면 이를 위한 방법은 세금을 더 걷거나 재정지출을 줄이는 두 가지밖에 없다. 하지만 롬니의 공약을 보면 부유층의 세율을 내리는 등의 증세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정지출 삭감 항목 또한 불분명하다. 비중이 큰 국방예산은 손대지 않고 복지예산을 약간 줄이겠다는 정도다.

라이언은 조세제도의 각종 ‘허점(loophole)’을 줄여 1조원을 더 걷겠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미 국세청은 직무유기로 처벌받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 공화당 내에서는 조세제도와 경제 청사진을 아귀에 맞게 설명하지 못한다며 롬니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는 이가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롬니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금융회사의 창업자이자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을 위기에서 구한 능력 있는 경영자다. 국내총생산(GDP)의 8%나 되는 재정적자를 세금을 올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능력자’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이처럼 산수도 맞지 않는 공약을 내놓고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것은 ‘증세는 결코 안 된다’는 공화당 주류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정치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최근 칼럼에서 티파티로 대표되는 극단주의자들이 공화당을 장악한 상황에서 당의 지원을 받으려는 후보는 ‘세금’과 ‘이민’에 긍정적인 단어를 결코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하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롬니의 자질보다 ‘새 공화당’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