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변영인] 추석 명절을 보내고

입력 2012-10-02 18:17


“엄마! 이번 추석에 뵐게요.” 며칠 전부터 서울에 사는 출가한 딸아이가 들뜬 음성으로 전화를 했다. 어김없는 계절의 성실함이 추석을 다가오게 했다. 옹기종기 어린 것들의 손을 잡고 고향을 향하는 대이동이 절기마다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도 밀리는 교통의 대혼잡을 감내하며 그 수행을 감행하게 하는가.

대가족이 모여 옛날로 돌아가면 고향의 의미는 제 빛을 찾는다. 그리고는 서로들 핵가족의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그것을 위해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설렘으로 기다린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아직 그래도 가족을 향한 잊을 수 없는 끈끈함이 가슴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은 인간의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회제도와 국가를 형성하는 기본을 만든다. 그래서일까. 요즘 젊은이들은 쉽게 이웃사람들을 삼촌, 이모라고 부른다. 그렇게라도 부르지 않으면 부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아예 상실할까 두려워지기 때문일까. 그런 호칭을 들으면 한편으론 가족과 친·인척의 호칭이 사전적 의미만 갖게 되거나 상점 여직원이 듣기 좋게만 사용될 뿐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돼 안타깝게 여겨진다.

추석을 보내고 나면 내담자 중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전화가 만만치 않다. 본래 가족제도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나님의 선의(善意)로 이루어진 것이건만 오늘날 왜곡현상이 여간 심하지 않다. 가족의 모습이 시대의 변천 속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나님의 의도하신 보기 좋은 가족관계는 어떻게 형성돼야 하는지 깊게 고민해 볼 시기가 아닐까 싶다.

성숙하고 사려 깊은 현대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가족관계에서만은 살아왔던 방식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 혼잡한 교통조건을 뚫고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가족들에게 혹여 원치 않는 아픔과 상처만 주고 떠나오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묵상하자. 현대인의 삶이 너무 곤고하여 그간에 서로 깊은 대화나 의사소통의 문제는 없었는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곡해한 인간관계를 맺는 결과가 되지 않았는지.

짧은 만남 이후 헤어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으려는 신앙인의 자세를 회복해보자. 이번 추석 연휴의 만남 이후 한 통의 전화나 몇 줄의 문자메시지라도 다정히 보낼 수 있는 가슴을 준비한다면 다음의 만남을 우리는 또다시 그리워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변영인(동서대 교수·상담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