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꼰대, 노인, 어르신
입력 2012-10-02 19:10
주변에 노인이 많다. 의자가 있는 곳엔 항상 그들이 있다. 대학 캠퍼스의 목 좋은 곳은 동네 노인들이 앉아 있다. 도서관에 가도 PC 앞은 나이 지긋한 노인들 차지다. 실버존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3가 일대는 냄새부터 다르다. 지하철이 공짜라는 ‘지공거사’들은 천안이나 춘천 나들이가 예사다. 거실과 안방을 오가는 ‘거안실업’ 대표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노인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지하철과 거리,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그들은 똑같은 노인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색과 생각을 드러내는 언행으로 구분하면 4개 경우의 수가 생긴다. 가장 나쁜 케이스는 행색이 남루한 데다 언행 또한 고루한 분이다. 70%쯤 된다고 본다. 반대의 경우는 경륜과 멋이 묻어나는 어른이다. 앞의 그룹은 꼰대, 뒤 그룹은 어르신으로 부를 만하다.
문제는 70%의 꼰대가 30%의 어르신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성찰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자신이 꼰대인 사실을 알면 이미 꼰대가 아니다. 꼰대라는 호칭은 ‘소통불능’ 혹은 ‘막무가내’라는 딱지나 마찬가지다. 50∼60대 장년층이 지레 듣기 싫어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늙어서 꼰대는 되지 말자”는 다짐이 곳곳에서 들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답도 나와 있다는 사실이다. 꼰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꼰대지수’를 측정하는 리스트를 올린다. 여기에 보탠 나의 5계명은 대충 이러하다. ①냄새를 지워라(자주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식후 양치를 하라) ②공공장소에서 품위를 지켜라(지하철이나 버스 타면 서서 갈 각오를 하라) ③눈길을 음전하게 유지하라(공연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옆 사람 휴대전화를 곁눈질하지 말라) ④시끄러우면 지는 거다(청력이 떨어진 상황을 감안해 대화하라. 소리 내어 하품하거나 한숨짓지 말라) ⑤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라(한번 했던 주장을 반복하거나 자르듯 단정 짓지 말라).
교양과 맵시가 돋보이는 노인은 꼰대의 칙칙한 웅덩이를 건너 어르신의 지위를 누린다. 더러 멘토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때의 어르신은 서울시가 노인의 대체용어로 정한 어르신과 다르다. 어제가 ‘노인의 날’이었다. 명절과 휴일 사이에 끼어 소리 없이 지나갔다. 노인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증좌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노인의 지위를 꼰대 아닌 어르신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주체는 노인 자신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