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397의 귀환] 90년대 복고문화 ‘바람∼ 바람∼ 바람∼’
입력 2012-09-28 17:17
서울 봉래동의 한 건설회사 과장인 하민경(37·여)씨는 요즘 대학시절 추억에 젖어 산다.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 평온했던 1990년대 캠퍼스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대중문화에 흠뻑 빠져들었던 그 시절이 갈수록 그리워진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한 달에 두세 번은 그때의 추억이 깃든 홍대 근처로 발길을 옮긴다. 금요일인 지난 21일에도 하씨는 미리 잔업을 끝낸 뒤 오후 7시30분쯤 홍대로 향했다. 금요일 밤 홍대 앞은 공연이 한창인 홍대 놀이터와 거리, 카페, 술집 모두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그가 친구들과 만나 ‘밤과 음악사이’(밤사)에 들어서자 93년 발표한 인기 가수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흘러나왔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듀스의 춤을 따라 췄다. 밤사는 90년대 유행한 록카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다. 최근 들어 대학시절 추억을 찾는 30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설립 6년 만에 전국 19개 점포에 연매출 200억원을 올리는 업체로 성장했다.
하씨는 “여기 오면 결혼하라는 주변의 잔소리 같은 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며 “내가 번 돈으로 20대 때보다 좀 더 여유롭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홍윤희(36·여)씨는 주말에 미혼인 친구들과 ‘추억 여행’을 떠난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캠핑 갔던 강촌과 무작정 배낭을 꾸려 떠났던 부산 등 목적지는 20대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홍씨는 “결혼을 하거나 돈을 모아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젊음을 만끽하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씨와 홍씨는 요즘 90년대 복고문화를 선도하는 ‘397세대’(30대·90년대 학번·70년대생)다. 이들은 대학시절 별다른 정치적 격변이 없었고 대중문화를 마음껏 누린 세대다. 이들이 핵심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90년대 복고 바람도 거세게 일고 있다. 이들은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빈곤과 성장’의 세대나 ‘저항과 운동’으로 상징되는 486세대처럼 치열한 사회적 이슈가 없음에도 최근 복고문화의 중심에서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은 90년대 학번의 대학문화와 첫사랑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흥행(관객 수 411만명)에 성공했다. 이를 시작으로 90년대를 겨냥한 콘서트와 뮤지컬 공연이 활발해지고 있다. 97년을 배경으로 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시청률 1%를 넘기기 어렵다는 케이블 방송에서 최고 시청률이 9%를 넘길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직장인 이수경(33·여)씨는 퇴근하면 응답하라 1997을 보기에 바쁘다. 그는 “이미 방송에서 다 봤지만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 다운받아 다시 보고 있다”며 “얼마 전 발매한 감독판 드라마OST도 구입했다”고 말했다.
397세대 남성들은 가정에 대한 인식도 40∼50대와 다르다. ‘자상한 아빠’를 추구한다. 산업화 세대인 자신의 아버지들과 달리 가족과 여가를 보내고, 자신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일에 치여 가족과 멀어지고 회사에서는 실직당한 아버지 세대의 아픔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한 광고대행사가 전국 남성 599명(2011년 기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입을 위해 일을 더 하는 것보다 여가시간을 더 갖는 것이 좋다’고 답한 30대 남성은 54.3%로 40대(34.4%), 50대(39.7%)에 비해 훨씬 많았다.
서울 목동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장민혁(36)씨는 아내와 세 살 된 아들과 주말마다 영화도 보고 교외로 나들이를 간다. 장씨는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잦은 야근과 회식에 지쳐 계셨고 주말에는 늘 주무셨다”면서 “저와 여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번 학기부터 상담심리학 대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과 입시교육은 싫다”면서 “제 아이에게 무뚝뚝한 아버지가 아닌 삶의 고민을 들어주는 멘토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진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