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스의 세계] “팀은 내 운명”… 이겨도 져도 무한응원

입력 2012-09-29 04:39


프로 스포츠 키운 일등공신

한국에 프로 스포츠가 탄생한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야구(1982년), 축구(1983년), 농구(1997년), 배구(2005) 순으로 프로 리그가 탄생하면서 각 구단을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 구단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서포터(Supporter)’의 등장은 프로 스포츠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서포터는 유럽에서 특정지역 주민이 자신들의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단을 응원하는 형태로 등장했다. 단순 팬클럽을 넘어 ‘우리 팀’이라는 일체감이 매우 강한 만큼 열렬한 응원을 펼친다. 그래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팀의 경기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정도다. 간혹 구단이 고용한 응원단과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서포터스와 응원단은 존재 목적이 다르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서포터스는 구단과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협력 관계다.

◇서포터 원조 축구=한국 프로스포츠 가운데 서포터가 가장 잘 정착된 종목은 축구다. 1995년 유공 코끼리 구단을 좋아하는 팬들이 모여 조직한 ‘유공 코끼리 팬클럽’(현 부천 헤르메스의 모태)이 처음 결성된 이후 점차 다른 구단으로 서포터 문화가 확산됐다. 서포터들이 축구장 골대 뒤편에서 지지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열광적인 응원을 펼치는 모습은 TV 화면을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각 구단의 수많은 서포터 가운데 열성 회원이 많고 조직적이기로 유명한 것은 수원 삼성의 ‘그랑블루’다. 95년 수원 창단과 함께 팬클럽으로 출범해 97년 ‘서포터스’로 이름을 바꾼 뒤 99년부터 ‘그랑블루’라는 명칭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랑블루는 올해 5월 수원 삼성의 또 다른 서포터인 ‘하이랜드 에스떼’와 통합돼 ‘프렌떼 트리콜로’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수원 삼성 깃발이 파란색, 흰색, 빨간색으로 돼 있는 데서 스페인어로 ‘청백적 전선(靑白赤 戰線)’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대신 그랑블루라는 명칭은 수원 시민에게 헌정돼 수원 삼성을 응원하는 모든 이들을 그랑블루라고 칭하고 있다.

현재 프렌떼 트리콜로 홈페이지의 온라인 회원만 5만여명이며 이 가운데 2만∼3만명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홈경기에 평균 1만여명이 응원을 오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수원 삼성이 출전했을 때 당연히 해외 원정응원도 간다. 그리고 프렌떼 트리콜로는 응원뿐만 아니라 수원 삼성의 경기 홍보나 지원 등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나아가 즐겁고 새로운 축구문화를 만들기 위한 콘서트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축구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하지만 팀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크다 보니 프렌떼 트리콜로의 일부 멤버들이 가끔 지나친 행동을 할 때도 있다. 그랑블루 시절부터 뿌리 깊은 라이벌인 FC서울 서포터인 ‘수호신’과의 기 싸움은 유명하다. 최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프렌떼 트리콜로가 ‘유나이티드=돼지’ 등 자극적인 문구를 쓴 걸개를 내걸어 인천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 인천 유나이티드와 대전 시티즌의 경기에선 대전 서포터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인천 마스코트를 상대로 분풀이를 하는 등 난동을 부렸고, 이 장면은 안방에 생중계됐다. 게다가 보도되지 않았지만 흥분한 양팀 서포터들은 경기장 밖에서 집단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원래 서포터 문화가 발달한 유럽 축구에서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악명 높은 훌리건도 바로 서포터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서포터들은 팀 성적이 나빠지면 경기 방식에 대해 감독 청문회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한다. 서포터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팀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길을 갈 경우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FC서울과 강원FC, 성남 일화의 선수단 버스가 성적 부진에 실망한 서포터들에게 가로막히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프로축구 K리그에서 1, 2부 승강제가 시행되면서 서포터들이 여느 때보다 성적에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야구 농구, 우리도 서포터 있다=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야구의 경우 공식 서포터가 있는 팀은 SK, 넥센, NC 정도다. 주로 신생구단으로 팬층이 얇기 때문에 서포터와의 관계에 공을 들인다. 이에 비해 다른 구단들은 이미 충성도 높은 수많은 팬클럽이 있기 때문에 굳이 서포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열정적인 서포터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우려하는 것이다.

농구와 배구에도 서포터스가 있다. 초창기 구단들이 팬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서포터스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야구나 축구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두 종목 구단들은 서포터스에 대한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하는 편이다. 원주 동부와 창원 LG 등은 이들을 대상으로 경품 이벤트를 열거나 해외 휴양지로 초청해 선수들과 교류를 갖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