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사업 투자” 검은 유혹… 퇴직자 등치는 사기 극성

입력 2012-09-27 19:03

3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09년 퇴직한 이모씨는 지난해 6월 한 업체 대표에게 3억원을 투자했다. 화장품 사업에 투자하면 매월 수백만원 상당의 배당금을 주겠다는 말에 속아 땅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과 퇴직금 전부를 넘겼다. 그러나 업체 대표는 지난 6월 돌연 모습을 감췄다. 함께 사업을 진행하던 업체 관계자들은 “돈을 찾을 수 있도록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하자”며 이씨를 꼬드겼다. 이들은 의료, 레저 등 사업 종류를 바꿔가며 이씨에게 계속 투자금을 요구했다. 경찰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고 최근 내사에 착수했다.

평생을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김모(62)씨도 올 초 사기로 퇴직금 5000만원을 전부 날렸다. 정부가 추진하는 100조원 규모의 컴퓨터 사업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기꾼의 말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김씨는 “잘되면 수십 배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며 실제 컴퓨터 사진까지 보여주는데 안 넘어갈 수 없었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경찰은 지난 4월 퇴직자 등 2496명을 대상으로 각종 사업을 빙자해 투자금을 가로챈 일당을 검거했다.

2010년 말 회사에서 퇴직한 신모(60)씨도 비슷한 사기를 당했다. 신씨는 월 250만원을 배당해 준다는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가 퇴직금 1억원을 투자했지만 알고 보니 투자한 업체는 유령회사였다. 경찰 조사 결과 사기꾼 김모(46)씨는 퇴직자와 영세 서민들을 상대로 투자금 1000만∼3억90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퇴직자들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61세 이상 남성을 대상으로 발생한 사기는 6907건에 달했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60대 응답자의 27.9%가 금융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퇴직자들을 노리는 이유는 거액의 퇴직금 때문이다. 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 퇴직자들이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 욕구를 쉽게 느낀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퇴직자들은 알면서 당하는 경우도 많다. 점점 퇴직 시기가 빨라지면서 자녀 취업이나 결혼 뒷바라지 등 부담이 여전해 이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기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예전엔 퇴직자들을 상대로 옥장판이나 건강식품 등을 미끼로 한 사기가 많았지만 최근엔 최첨단 사업이나 해외 투자 등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고 있다.

이 같은 사기는 피해 규모가 확산된 뒤 전모가 드러나기 때문에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사기가 입증되더라도 범인은 잠적하거나 외국으로 도피한 경우가 많다. 사기꾼을 잡더라도 돈을 빼돌린 상태여서 피해액을 보상받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특히 공무원이나 대기업 출신 퇴직자들은 자신이 사기에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범행 대상이 되기 싶다”며 “쉽게 높은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유혹은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