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도와주는데 이깟 것 못사나요… ”

입력 2012-09-27 21:47


국민일보기자·사회복지사가 둘러본 ‘쪽방촌’ 추석맞이

26일 밤 9시. 김경미 사회복지사(28·여·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가 추석을 앞두고 서울 제기동 정릉천 뚝방 옆 김정하(41·여)씨의 지하 셋집을 찾았다. 관내 기초생활수급자들에 대한 상담과 방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여서 많이 지친 상태. 이날 낮에도 7∼8집을 방문했다. 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이날 밤을 놓치면 추석이 지나서나 들르게 될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집은 편부모 가정입니다. 엄마가 3녀1남을 키우고 계세요.”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서 김 복지사가 그 집 막내아들 재영(이하 가명·초교 6년)이의 이름을 불렀다. 어둑해서 헛디디기 쉬웠다.

김 복지사는 그러나 마치 친정 언니 집에라도 가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섰다. “어이구 왔어. 한창 바쁠 텐데….” 어머니 김씨가 맞았고 재영이와 세 누나가 우르르 현관문으로 얼굴을 내민다. 왁자지껄하다. 김 복지사가 “떡볶이 언제 먹으러 갈까?” 하고 말을 건네자 재영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밥상을 테이블 삼아 둘러앉은 이들은 긴 시간 수다를 떨었다. 셋째 자민(중1)이는 복지관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고, 둘째 자인(중3)이는 인근 KDI 정책대학원생들로부터 영어를 배운다. 큰딸 자영(고1)이는 공부를 잘해 의류회사 PAT가 주는 장학금을 받았다고 자랑이다.

한바탕 아이들이 떠들고 지나가자 두 사람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정부가 한 달에 두 번 지급하는 쌀(20㎏)을 잘 받고 있는지, 수급비(월 60여만원)를 차질 없이 받는지 등을 챙겼다. 김씨는 인근 봉제공장에서 혁띠에 액세서리를 다는 일을 하며 월 80여만원을 번다. 다섯 식구 생계 유지에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다.

김씨는 그러나 웃으며 말한다. “다 살아요. 이렇게들 이웃이 도와주는데 이깟 것 못살아요. 수해로 집에 물이 차면 속이야 상하지만 이겨내고 살면 되죠. 속 썩이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김씨는 포장마차를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이를 위해 최근 오토바이와 자동차 운전면허도 땄다. 또 서울시가 저소득층 가정을 위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희망플러스통장에 매달 5만원씩 저금도 한다. 그녀에게 지금 뭘 가장 해보고 싶냐고 묻자 “바다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회를 실컷 먹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을 나서면서 김 복지사가 말했다. “가정폭력 등의 문제로 5년 전부터 혼자 사시지만 생활력이 굉장히 강하세요. 수급자 대부분의 가정을 돌면 마음이 무거운데 여기만 오면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앞서 이날 김 복지사는 ‘모텔 소년’ 철수(초교 3년)네도 방문했다. 철수는 올 초 허름한 모텔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지자체, 이웃 주민 등이 십시일반으로 2000만원의 전세자금을 모아줘 처음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김 복지사가 제기동역에서 전철을 탄 시간은 밤 11시. 새댁인 김 복지사는 “신랑 밥을 제대로 못 챙겨 준다”며 귀가를 서둘렀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