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의 몰락… M&A 활성화 나섰다가 되레 상장폐지
입력 2012-09-27 18:38
화려하게 날아올랐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몰락하고 있다. 공모 당시 청약경쟁률이 90대 1에 육박할 정도로 열풍을 일으켰던 ‘국내 1호 스팩’ 대우증권코리아기업인수목적회사(이하 대우증권스팩)가 상장폐지 절차에 돌입했다.
2009년 도입된 스팩은 비상장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다. 상장 뒤 36개월 이내에 비상장기업과 합병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다른 스팩들도 대우증권스팩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라 침체의 늪에 빠진 스팩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합병조건 완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거래소는 기한 내 합병하지 못한 대우증권스팩을 매매거래 정지하고, 상장폐지한다고 27일 밝혔다. 다음 달 15일 정리매매를 거쳐 최종적으로 상장폐지되면 첫 사례가 된다.
대우증권스팩은 2010년 2월 일반인 공모 청약 때 경쟁률이 87대 1에 이르고 청약자금으로 1조1000억원이 몰리는 등 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합병을 할 적당한 비상장기업을 찾지 못했다. 대우증권스팩의 주가는 상장 36개월 동안 공모가보다 0.70% 오르며 제자리걸음만 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청산만기일이 곧 다가오는 다른 스팩들도 대우증권스팩과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장 2호 스팩인 미래에셋스팩1호는 다음 달 8일, 동양밸류스팩은 23일까지 기업 합병 공시를 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를 피할 수 없다. 우리스팩도 올해 안에 상장폐지 예비심사 청구 기한이 돌아온다.
스팩은 도입 초기 ‘시중자금의 블랙홀’로 불릴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2010년에는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스팩 상장에 뛰어들며 신규 상장의 24%를 스팩이 차지했다. 1호 스팩이 나온 뒤 1년 만에 22개의 스팩이 신규 상장됐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라 스팩의 합병 성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비상장기업은 높은 기업 가치를 적용받기 원하지만 증권사는 나빠진 증시 상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새로운 스팩이 출시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제도를 보완해야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대익 연구원은 “스팩을 통한 상장에 혜택을 부여하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스팩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이 입는 손실은 크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스팩은 공모자금의 95% 이상을 한국증권금융 등 금융회사에 예치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정 기간 투자자금이 묶이게 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연구원은 “구조상 스팩의 투자 위험은 금융투자업자와 발기인들이 지게 된다”면서도 “상장폐지 뒤 청산 절차를 거쳐 개인투자자가 돈을 돌려받기까지는 2∼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