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생명의 다리

입력 2012-09-27 18:07

서울 여의도와 마포를 연결하는 마포대교가 바뀌었다. 최근 5년간 한강 다리 투신 시도 875건 가운데 가장 많은 85건이 발생한 이곳을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협약을 맺어 ‘생명의 다리’로 새 단장을 했다.

다리에 들어서면 양 방향 2.8㎞ 난간을 죽 따라가며 깔끔한 서체의 글귀들이 눈에 띈다. 초입에는 ‘밥은 먹었어?’ ‘요즘 바빠?’ ‘별일 없지?’ ‘바깥바람 쐬니까 좋지?’ ‘다음에 또 바람 쐬러 와’ 등의 문구가 배치됐다.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상황에 내몰린 이들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인사를 걸어줌으로써 그들이 잊혀진 존재가 아님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목욕 한번 가서 몸 좀 푹 담가 봐’ ‘슬프거나 우울한 일이 있다면 집에 가서 청양고추 한 입 먹어 보세요. 아픔은 더 큰 아픔으로 잊는 법이니까요’ ‘가슴이 먹먹할 때 어때요? 노래 한번 불러 보는 거’ 등 건강한 삶의 본능을 되살리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있다. 밤에는 보행자들이 2∼3걸음을 옮길 때마다 센서가 작동해 LED 조명이 켜지게 설계됐다.

다리 중간에는 ‘비밀, 있어요?’ ‘혼자서 꾹꾹 담아온 얘기 시원하게 한 번 해봐요’란 글귀와 함께 ‘생명의 전화’ 4대가 설치돼 있다. 한 남자가 실의에 빠진 친구의 볼을 꼬집으며 위로하는 황동상 ‘한번만 더’엔 ‘여보게 친구, 한번만 더 생각해 보게나’라는 좀더 직접적인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총 20여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문구들은 한국자살예방시민연대와 한국자살예방협회, 한국생명의전화 같은 시민단체와 심리학자, 광고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고안했다. 투신 기도자들을 자극할 노골적인 경구는 배제하고 양방향 소통에 주안점을 뒀다. 투신방지벽 같은 살풍경한 수단 대신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새로 단장한 마포대교가 산업화와 도시화에 찌든 시민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소통의 여러 방법들을 구현함으로써 시민들의 힐링 장소로 기획된 다리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자살 명소(?)로 악명 높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도 여러 방지책을 검토했으나 환경, 안전, 미관 문제 등에 부닥쳐 ‘생명의 전화’ 가설 외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벌써 미국 방송이나 프랑스 TV, 네덜란드 언론 등이 마포대교를 취재해 갔다고 한다. 일반 시민들도 가족끼리 손을 잡고 마포대교를 걸으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