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집의 관계에 대한 심리극… 이신조 장편 ‘우선권은 밤에게’
입력 2012-09-27 17:43
“나는 스물두 살이 된다. 스물 하나, 지난 1년 동안 ‘아침부동산’에서 일하며 실상 아침에 집을 구하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아침부동산이냐고? 내 이름 끝 자가 아침 조(朝)자 아니냐.”(14쪽)
이신조(38)의 장편 ‘우선권은 밤에게’(작가정신)의 주인공은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의 21세 여자다. 계부의 부동산중개소에서 일하는 ‘나’를 두고 계부는 “집들을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대하며 그 공간의 의미를 몸으로 알아내는 재주를 가졌다”고 다독인다. 대학생들이 사는 원룸에서부터 단독주택까지 “집 보러왔다”고 하면 문을 열어주는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서 살고 있는지 ‘나’는 훤히 꿰뚫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가 좋아하는 집은 ‘장독대 집’으로 불리는 오래된 단독주택이다. 열아홉에 ‘나’를 낳고 외지를 떠돌던 어머니로 인해 모성 결핍을 앓아온 ‘나’에게 그곳은 엄마 품과 같은 장소이다. ‘나이트 룸’이라 이름 붙인 그 집의 골방에 들어가 흔들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면 마치 밤잠을 자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 같은 ‘나’는 나이트 룸에서 치유를 받으며, 차고 단단한 도시 속에서 밤을 이겨낸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외가에서 자라야 했고 외할아버지의 호적에서 계부의 호적으로, 다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외가 호적으로 옮겨가야 했던 ‘나’에게 집은 고된 몸을 눕힐 수 있는 안식처이자 모성의 공간이다.
소설은 자기가 살 곳을 찾는 행위야말로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행위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것이 골방이든, 단독주택이든, 원룸이든 한 존재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집을 갖는다는 것은 ‘생명’을 선물 받는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이다. 집은 세계와 나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적절한 거리를 부여함으로써 안식을 주며, 닫혔던 자아를 비로소 열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시간대는 주로 밤이다. 일터에서 돌아와 지친 몸을 눕히는 밤. 그래서 ‘우선권은 밤’이다.
이신조는 “이사를 가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집을 보러 다녔는데 이사는 가지 못하고 집을 보러 다니는 소설을 썼다”며 “소설을 쓰는 동안 제법 오래 살고 있는 집의 소리에 냄새에 맛에 내가 스며 있었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