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 익는 한가위] 세상살이 많이 팍팍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 만나 다시 힘 내세요

입력 2012-09-27 15:10


교과서 ‘의좋은 형제’ 실제 무대

충남 예산 이명부·이상구 형제


“옛날 어느 시골에 형제가 의좋게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는 같은 논에 벼를 심고 부지런히 김을 매고 거름을 주어 잘 가꾸었습니다. 벼는 무럭무럭 자라 가을이 되자 곧 베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구름 사이에서 달님이 환히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아이구, 형님 아니십니까?’ ‘아, 너였구나!’ 이제야 형제는 벼 낟가리가 줄어들지 않은 까닭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의좋은 형제’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이곳저곳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린 시절 추억을 반추하고 우애를 확인하는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동생은 별 일이 없을까? 이번 태풍으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형님은 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까? 마음이야 당장이라도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현실은 안부전화 한 통 하기가 쉽지 않은 세태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제 무대인 충남 예산 대흥면은 추석을 앞두고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조선 세종 때 이곳에서 살던 이성만 이순만 형제는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좋기로 소문나 연산군 3년에 후세의 모범이 되도록 조정에서 ‘이성만 형제 효제비’를 건립했다고 전해온다. 1978년 발견된 효제비는 예당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하자 대흥면사무소 앞으로 옮겨져 후세에 우애의 본이 되고 있다.

‘의좋은 형제’의 마을에서 태어나 아랫집 윗집에서 평생을 우애 있게 살아온 이명부(69) 이상구(60) 형제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실천하는 현대판 ‘의좋은 형제’로 소문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형은 동생을 자식처럼 돌봤다. 형은 당뇨를 앓고 있는 동생을 위해 온갖 약을 챙겨주고, 동생은 얼마 전 산에서 캔 산삼 한 뿌리를 연로한 형에게 양보했다. 동생은 날씨가 궂으면 행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걱정스러워 형님 집을 한 바퀴 돌고, 형은 그런 동생이 안쓰러워 마음이 아프다.

중국 당나라 역사서인 북제서(北齊書)에 난득자형제(難得者兄弟)라는 말이 나온다. 형제는 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의가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형제는 몸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팔다리와 같다고 해서 여족여수(如足如手)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동기일신(同氣一身)인 형제자매가 죽은 슬픔이 몸의 반쪽을 베어 내는 고통 같다고 해서 할반지통(割半之痛)에 비유하기도 했다.

피를 나눈 형제의 우애가 이토록 소중하지만 추석날 형제들이 모이면 재산이나 부모 모시는 일로 아옹다옹 다투는 소장지환(蕭臧之患)이 신문 지면을 장식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경제가 어려워 삶은 조금 팍팍하더라도 예산의 ‘의좋은 형제’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추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 우애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이명부씨의 지극히 당연한 말과 “형님을 존경하면 서로 다툴 것이 없다”는 이상구씨의 지극히 평범한 말은 각박한 세태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이번 추석에 고향에서 형제를 만나면 초등학교 때 배운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떠올려 볼 일이다.

예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