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에 실망” 정부, 공식반응 왜… “北, 개혁·개방 자신감 없고 경제체력 한계” 판단

입력 2012-09-26 19:05

24∼25일 열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결과에 청와대가 즉각적으로 공식 반응을 보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반응도 “실망스럽다”는 직설적 표현을 썼다. 우리 정부가 지난 7월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숙청 이후 가속화되던 북한의 경제개혁 시도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 북한에 대한 기대 접었나=정부는 지난 1월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부정적 언급 대신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를 인정하고 기다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도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고, 지난 11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특강에서는 미얀마를 북한이 따를 구체적 모델로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 최고인민회의 결과와 그 직전까지 정부가 파악한 북한 지도부 움직임을 볼 때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단기간에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26일 “6·28 조치로 언급되는 일부 경제 변화 움직임을 개혁·개방으로 볼 수는 없다”며 “북한 지도부가 이를 감행할 자신감과 뒷받침할 북한 경제의 기초가 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협동농장에서 생산물의 일정량을 인센티브 형식으로 나눠주는 방안을 예로 들면 절대 생산량이 부족한 북한에서 최대 50%까지 생산량을 나눠준다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6월 28일 밝힌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제 확립에 대하여’라는 방침을 시범 실시하는 과정에서 쌀값과 환율이 급등해 체제 안정에 위협을 받은 북한 당국이 경제개혁을 일시 중단했다는 관측도 있다.

◇대북 전문가, 북한 속도조절론에 무게=정부가 북한 움직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는 “대내외적으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의 경제개혁에 대한 구체적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많아 정부가 한편으로 기대를 한 것 같다”며 “김정은 체제를 정비해가는 과정에서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3차장을 지낸 서훈 이화여대 초빙교수도 동아시아재단 주최 강연에서 “김정은의 입지는 과거 지도자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정권을 유지하려면 불가피하게 경제개혁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 농후해졌다”며 “결국 변화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2002년 ‘7·1 경제개선조치’를 대내외 발표 없이 시작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폐지한 바 있다. 권 교수는 “경제개혁 조치가 만약 2002년처럼 실패로 끝났을 경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를 이번에 공개했다면 김 제1위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며 “최고인민회의에서 깊숙한 논의를 하고 결론을 내렸지만 발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