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점 보러 다니지 말라
입력 2012-09-26 18:38
이번에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대통령 선거가 80여일 앞으로 다가오자 역술인들의 각종 ‘예언’이 시작됐다. 얼마 전 사석에서 회사 선배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해 화제가 된 역술인 A씨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중 한 명을 특정해 당선을 예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곧바로 기자가 A씨의 2007년 초 ‘과거사’를 토대로 반론을 폈다. 그는 5년 전 기도를 하러 산에 올랐다가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을 봤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흘렸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돼 더 이상 연막만 피울 수 없게 된 A씨는 예지몽에 나타난 후보의 이름을 공개했지만 그는 정작 당내 경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복채 낼 돈 있으면 기부를
더 드라마틱한 예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출현을 맞춰 참여정부에서 한때 상종가를 쳤던 부산 출신 역술인 B씨 얘기다. 2002년 대선을 수개월 남겨놓고 노 후보 지지율이 10%대 초반까지 곤두박질쳤다. 노 후보의 매우 가까운 가족과 부산 출신 민주당 인사가 답답한 마음에 역술인을 찾았다.
그런데 노무현의 사주를 들은 B씨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12월 19일 투표일에 곤룡포(옛 임금이 입던 옷)를 입을 것이다”고 장담했단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1년 운세가 좋지만 선거 당일 운은 노 후보가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대단했던 B씨는 그러나 5년 뒤 또 다른 민주당 잠룡(潛龍)의 대권을 점쳤지만 그는 당내 경선에도 나서지 못한 채 정치에서 멀어졌다.
웃기는 사례는 그 외에도 많다. 97년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김종필(JP) 자민련 총재가 김대중 후보와 단일화를 하고 대선 출마를 접었는데도 자민련 서울 마포 당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역술인이 찾아와 JP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금 광역단체장을 하고 있는 한 정치인은 이전에 검은 도복을 입은 ‘도사’가 자신에게 와 대선에 출마하면 당선된다고 했다면서 캠프를 꾸린 적도 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역술인들이 뭔가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확률 예언’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전 대선은 초등학생도 알 만큼 당선자를 압축할 수 있었다. ‘김대중 또는 이회창’ ‘이회창 아니면 노무현’ 이런 식이었다. 직전 대선은 지지율 격차가 확연해 ‘정동영보다는 이명박’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거의 아니면 말고 식의 50% 확률이었던 셈이다. 이번 대선도 현재 ‘박·문·안’ 3자 구도이니 18대 대통령을 맞출 확률은 33% 남짓이고, 야권 후보가 단일화된다면 50%로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로또복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어이없는 확률 게임임에도 장사가 되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점을 좋아하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류의 고객들은 운세가 맞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법도 거의 없다. 설사 틀려도 ‘갑작스럽게 운이 변했다거나, 다음에 더 운이 좋다’고 하면 된다. 실제 전직 총리 한 사람도 5년 전에 출마하려다 접은 뒤 만난 역술인이 2012년 운이 더 좋다고 하자 한동안 용꿈을 꿨다고 한다.
힘들 땐 전통시장 가보라
결론은 분명하다. 아무리 답답하고 지지율이 안 나와도 21세기 대한민국 지도자를 꿈꾼다면 점 보러 가면 안 된다. 그런 데 가서 복채로 내놓을 돈이 있으면 불우이웃들에게 기부하는 게 맞다. 그러면 지지도가 조금은 올라갈 수도 있다. 점집 말고 가야 되는 곳은 따로 있다. 기자도 힘들 때 자주 가는 곳, 전통시장을 추천한다. 고단하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거기에 있다. 역술인 찾아갈 마음이 사라지면서 분명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것이다.
한민수 정치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