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성주호] 반대로 가는 세제 개편안
입력 2012-09-26 18:37
조세정책이 국가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어야 조세정의가 실현된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소득세법개정안은 ‘부자증세, 서민감세’를 기본틀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서민 금융과 직결되는 ‘보험차익 비과세 제도’를 대폭 수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서민 금융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축시킬 개연성이 높다. 비과세 대상이었던 즉시연금에 대해, 그리고 계약 이후 10년 이내에 연 200만원을 초과하는 중도인출 보험에 대해 모두 과세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즉시연금에 대해서는 퇴직금이나 주택 매각자금 등의 목돈을 생활연금으로 전환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비과세 혜택을 부여해 왔다. 이는 정부가 하는 일종의 은퇴 지원 프로그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시연금의 전면적 비과세 폐지는 정부가 오래 준비해 온 고령화 대책과 상충하는 측면이 강하다.
또 근로기간 중에 적소성대(積小成大)의 마음으로 노후에 대비해 일찍이 저축성 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만기 이전에 목돈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주택마련, 자녀결혼, 입원치료비 등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이 불현듯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보험 계약을 해지하거나 약관대출을 받아야 하는 서민층의 불이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환위기 상황에서 중도인출형 보험이 처음 도입되었다. 현재 중도인출 옵션은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 자금을 확보하고 아울러 보험 본연의 보장 기능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보편적 보험의 기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험차익 비과세는 근로자들이 은퇴자산, 주택 자금 등 생활 속에서 예상되는 필요 자산을 장기적으로 미리 축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따라서 ‘장기’가 아닌 ‘즉시’인 경우나 ‘저축’이 아닌 ‘중도인출’인 경우 과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물론 일부 고소득자의 경우 보험차익 비과세를 세금회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어 개선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부자들의 악용 사례가 보편적 사례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자칫 ‘극소수 부유층의 과세회피’라는 빈대를 잡으려다 ‘서민의 노후’라는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
분명 조세정의적 관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점증하고 있다면 비과세 혜택에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 접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택은 있지만 생활비가 없는(house rich, cash poor) 서민은퇴 계층을 위해 정부 주도적으로 도입한 주택연금에서 그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주택연금은 담보대출 한도를 5억원으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험차익 비과세 한도를 5억원으로 설정한다면 ‘부자증세, 서민감세’라는 본래 취지를 상당 부분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부자증세를 위해 중도인출 시 과세를 한다면 서민금융 지원 확대라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것이며,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서민들의 노후를 위협하는 격이 된다. 즉시연금의 목돈이 부자들의 장롱 속 거액의 현금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우리 아버지의 퇴직금이라면, 또 중도인출이 부자들의 세금회피 수단이 아니라 병실에 누워 있는 우리 가족의 치료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과연 이 세제개편안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 사회의 아픔을 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정부의 취지와 전혀 다르게 ‘부자이탈, 서민증세’로 변할 개연성이 없는지 원점에서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하기 바란다.
성주호 경희대 교수 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