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다시 뭉친 ‘살아있는전설’ 들국화 “감성이 풍부한 음악 들려 드려야죠”

입력 2012-09-26 18:17


1985년 나온 들국화 1집의 음반 커버는 1970년 발매된 비틀즈 마지막 앨범 ‘렛 잇 비(Let It Be)’와 묘하게 닮아 있다. 두 밴드는 모두 격자(格子) 모양으로 4등분한 공간에 멤버 4명의 얼굴을 넣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선 다양한 설(說)이 나돌았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비틀즈를 향한 존경의 마음을 담은 들국화의 오마주다’ ‘들국화가 비틀즈 음반 디자인을 베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 양재동 한 합주실에서 만난 들국화 보컬 전인권(58)이 밝힌 ‘진실’은 싱겁기 그지없었다.

“비틀즈 흉내 낸 건 절대 아니에요. 음반 낸다고 4명이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잘 나온 게 한 장도 없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개인 사진 4장 찍은 뒤에 그거 오려서 붙였어요. 그게 다예요.”

오마주도, 표절도 아닌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음반이 나오고 27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이 해프닝은 일종의 ‘암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들국화가 훗날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비틀즈 못지않게 유명하고 위대한 밴드가 될 거라는 암시 말이다.

2007년 음악 평론가들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꼽았는데 1위는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이 실린 들국화 1집이었다. 존경의 의미를 담은 후배들의 헌정 음반은 2001년과 2011년 두 차례나 발매됐다. 들국화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버린 우리 대중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이 밴드는 87년 음악적 견해 차이로 해체됐다. 멤버들은 지금까지 저마다 다른 궤적을 그리며 세월을 흘려보냈다. 특히 전인권은 마약 때문에 5번이나 수감될 만큼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런데 지난 5월, 음악 팬들을 들뜨게 만드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전인권과 최성원(58·베이스), 주찬권(57·드럼)이 모여 25년 만에 팀을 재결성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2막 1장

합주실에 들어갔을 때 들국화 멤버들은 다음 달 1∼7일(4일 제외) 서울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여는 콘서트를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었다. 공연 타이틀은 새 출발의 강한 의지가 담긴 ‘2막 1장’. 작명 이유를 물었더니 주찬권은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생각해주시면 될 것”이라고 했다.

들국화는 이번 공연에서 자신들의 명곡을 재해석해 들려줄 예정이다. 학전 블루가 200석 규모밖에 안 되는 소극장인 만큼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눈앞에서 들국화와 교감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최성원은 “팬들과 소통의 장(場)이 펼쳐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열면 음악이 더 잘 뭉쳐져요. 무대에서 노래 대신 많은 이야기를 해도 어색하지가 않죠. 객석에 누가 왔는지도 다 알 수 있어요. 예쁜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도(웃음).”

‘2막 1장’ 공연은 재결성된 들국화가 처음 갖는 공연은 아니다. 이들은 지난여름 서울 부산 대구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특히 7월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지산)에서 카리스마와 관록이 묻어나는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지산을 찾은 라디오헤드 등 해외 유명 밴드와 견줘도 부족함이 없었다.

재결성 선언 이후 25년 만에 맞춰본 호흡은 어떠할까. 최성원은 “들국화 최전성기는 바로 지금인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주찬권은 “인권이 목소리나 밴드의 전체 사운드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더 풍부한 감성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전인권은 “팬들은 우리가 또 해체할까 걱정하는데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이 친구들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 노는 건 재미가 없어요.”

재기의 꿈

들국화가 재결성되기까지의 스토리는 그간 언론 매체를 통해 숱하게 다뤄졌다. ①2010년 2월, 전인권은 마약 치료를 위해 복용한 모르핀에 중독돼 한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②그때, 2002년 이혼한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들국화 팬클럽 회원들과 힘을 모아 그를 전남 담양 한 요양원으로 보낸다. ③요양원에서 1년 4개월 동안 고통의 나날을 견딘 전인권은 2011년 8월 퇴원한다. ④전인권은 아내의 헌신적 도움으로 기적처럼 옛날의 목소리를 되찾고, 이런 그를 만나기 위해 주찬권이 찾아온다. ⑤두 사람은 제주도에 은둔해 살던 최성원을 찾아간다. ⑥전인권의 목소리가 옛날처럼 좋아진 것을 확인한 최성원은 들국화 재결성에 동의한다.

다시 팀을 재건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최성원은 “재기하려고 모인 거지 무슨 이유가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요즘 가요계에 쓴소리를 날렸다. “아이돌 음악은 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 걔네는 치어리더나 의장대에 불과하다” “아이돌 음악은 사람들 감성을 마비시키는 음악이다” “국가가 음악을 예술이 아닌 수출 상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인권의 생각도 비슷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에 제일 중요한 건 ‘감동’이에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감동 말이에요. 그런 걸 좋은 음악은 줄 수 있지요. 하지만 요즘 가요엔 이런 감동이 없어요.”

들국화는 앞으로 ‘들국화 포에버’라는 제목의 싱글 음반을 계속해서 낼 생각이다. 여기엔 자신들의 히트곡을 재편곡한 곡이 실릴 수도, 신곡이 실릴 수도 있다. ‘살아있는 전설’ 들국화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