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에타’ 주연 조민수 “김명민·한석규씨! 저랑 작품 한번 할까요?”

입력 2012-09-26 18:12


조민수(47). 그와의 인터뷰는 유쾌했다. 영화 ‘피에타’(감독 김기덕)에서 원한과 복수로 가득 찼던 심각한 분위기는 없었다. 언뜻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인상과도 달랐다. 실제로 만난 그는 소탈하고 명랑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피에타’의 주연배우 조민수를 만났다. 그는 베니스의 여운과 기쁨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 김기덕 감독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유일한 여자?

유난히 얼굴이 작은 조민수. 김 감독은 그의 작은 얼굴을 보고 “배추처럼 쏙 뽑아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그 분이 말씀하는 스타일이에요.” 이제는 다 적응됐다는 투다. 캐스팅에 대해서도 “감독님은 그냥 저희 소속사 대표와 친해서 상의하려고 연락했다가 마침 거기 두 배우가 있어서 캐스팅한거라고, 말은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가볍게 일 처리하는 사람은 아닌데 말투가 그래요.”

여성으로서 김 감독의 전작들이 불편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일 터. “이번 작품도 뭔가 찜찜하긴 한데 먹먹하다는 느낌이 더해진 것 같아요.” 이번 시나리오 역시 처음 받았을 때 불편한 요소가 많았다. 못하겠다, 대본 수정해달라고 했다. 감독이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지난 1월의 몹시 추운 날 닷새나 엿새 동안 촬영했다. 서울 청계천과 경기도 양평에서 주로 찍었다. “저예산 영화잖아요. 세트를 따뜻하게 안 해줘서 춥게 찍었어요.”

‘피에타’는 사채회사 행동대장인 강도(이정진)에게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엄마라고 다가가면 무장해제하겠지 생각했어요. 인간이 돌아보면 누구나 다 불쌍하고 결핍된 존재 아닌가요. 감독의 전작인 ‘나쁜 남자’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남자가 사랑 표현을 못하는 것이라고 봤고요.”

‘피에타’ 귀국 기자회견 때 조민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 감독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 김 감독의 말이 길어지자 “감독님, 가만히 좀 계세요”라면서 아예 마이크를 뺏어 버렸다. 그는 “이 분은 말없음이 미덕인데 말이 많으면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아 제가 보호해주려고 한 거예요”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수상 소감으로 ‘아리랑’을 부르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서 조용히 얘기했죠. ‘짧게 불러요’라고(웃음). 하지만 오해는 마세요. 개인적으로는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랍니다.”

# 베니스의 여인 조민수

“레드 카펫 행사나 외신기자 인터뷰 때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좋았죠. 질문이 많이 들어왔고 사인 요청도 왔고요. 심지어 미리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해달라는 매체도 있었어요. 그때 말했으면 정말 창피할 뻔 했죠.”

현지 분위기는 그랬다. ‘피에타’가 뭐라도 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식 행사로 초청받은 3박4일 이외는 자비 부담. 그래도 그동안 김 감독이 해외영화제에서 너무 외롭지 않았나는 생각에 폐막식까지 같이 기다리기로 했다. 여우주연상도 내심 살짝 기대했다.

시상식장에서 김 감독 손을 꼭 잡고 있었다. 2등상인 은사자상이 호명될 땐 ‘제발 지금 부르지 마’라고 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황금사자상에 “김기덕 피에타”라고 불리는 순간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제가 그 자리에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국가대표 같은 생각이 들었죠.”

무대에서 마치고 내려오는데 미국 감독인 마이클 만 심사위원장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폐막식 후 참석한 파티에서 심시위원장이 “당신이 여우주연상으로 내정됐는데 황금사자상과 다른 주요 상을 동시에 받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못 줬다”고 했다. “그 분위기 자체가 상이었어요. 규정이 그런 걸 어쩌나요. 그래도 여우주연상보다 황금사자상이 훨씬 좋아요.”

# 불혹 훌쩍 넘긴 배우, 매 순간이 행복

스무 살이 아니라 마흔을 훌쩍 넘어 받은 상이기에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것을 안다. “황금사자상 수상작 배우라고 지금 저를 보고 시나리오를 쓰진 않을 것이고, 다만 지금 있는 시나리오 중 캐스팅은 조금 앞 순위가 될 것 같네요.” 냉정한 평가다. “드라마 ‘모래시계’ ‘피아노’, 영화 ‘피에타’ 등 좋은 작품 안에 제가 있는 게 행복할 뿐이죠.”

10월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도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베니스에선 그들이 저를 모르니까 내가 최고인 것처럼 ‘대표놀이’를 했지만 부산에선 내 위치를 사람들이 뻔히 아는데 어떻게 하죠”라며 웃었다.

확실히 대접은 달라졌다. 베니스로 출국할 때는 인천국제공항에 기자가 4명 나왔다. 올 때는 깜짝 놀랐다. 특공대가 경호하면서 밖에 기자들이 몰려왔다고 했다. “이게 뭐지. 웬일이야” 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네 싶었다.

그는 나이 들고 보니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집 앞에 있는 산에 올라가 보니 가을꽃이 폈어요. 아, 꽃이 피고지고 하는구나. 꽃 색깔이 바뀌었네 하고 꽃이랑 대화를 나누지요. 큰 건 아니에요. 감사한 마음만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 배우에 관해 묻자 “젊은 배우 얘기하면 팬들이 뭐라 할 것 같다”며 “김명민 한석규씨처럼 에너지 넘치는 배우랑 같이 작품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김 감독과 작업하려면 배우가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신인 배우가 머리를 싸매고 붙어볼 필요가 있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지고 깔깔 웃었다. “피에타요, 딴 사람이 했어도 이렇게 잘 됐을까요.”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