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택수] 선거 여론조사, 권력의 제5부
입력 2012-09-26 18:44
“표심 결정하는 중요성 갈수록 커져… 오차 감안해 참고지표로만 활용해야”
국가의 권력 3부, 즉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부는 언론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는 여론조사 기관이 제5부로 부상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각 당의 후보를 선정하는 경선 또는 후보단일화의 방식으로 채택되고, 본 선거에서도 여론조사에 의해 유권자들의 표심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오는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유력하게 거론되는 세 가지 방식이 후보자 간 담판, 여론조사, 선거인단 투표인데 그중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여론조사다.
혹시 담판이나 선거인단 투표로 가더라도 여론조사에서 앞선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협상의 주도권을 잡을 테니 권력의 제5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주 대선을 대략 90일 앞둔 시점에서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했고, 그로부터 3일 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문재인 후보가 확정되면서 각 언론사는 판세 분석을 위해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평상시 일, 주 단위 정례 여론조사를 하는 기관까지 합치면 무려 9개의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 23일과 24일에 쏟아져 나왔다. 9개 조사기관의 공통된 조사 결과는 ‘안철수 후보 지지율 급등’이었다.
사실 안 후보는 출마 후 3일째가 되는 21일, 이른바 컨벤션 효과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주말을 지나 24일까지 9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가 일제히 보도되자 다시 상승했다.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였다. 그로 인해 지난 24일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의 지지율 상승효과는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여의도 정가에서는 박 후보의 기자회견 시점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뒷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렇듯 여론조사에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여론조사를 하는 조사업계에서도, 그리고 학계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입법부가 민감한 쟁점 사안에 대한 선택, 혹은 선거에서 적합한 후보 선택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여론조사에 과도하게 의지함으로써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여론조사에 과도한 권한을 넘겼다는 것이다.
더욱이 여론조사에는 내재적으로 수반되는 다양한 오차가 있다. 표본집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표집오차(sampling error) 외에 문항설계 과정이나 실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표집오차(non-sampling error)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동전화 명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포함오차(coverage error) 등도 있다. 때문에 참고용으로만 활용해야 하는데 주요 정책에 있어 의사결정을 하거나 선거에 있어 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여론조사에 의지하다 보니 감당하기 힘든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이러한 책임에는 입법부 외에 언론사와 유권자들의 책임도 있다. 정책 대결보다는 경마식 보도로 흥미 위주의 기사를 쓰는 언론사들과 그러한 기사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유권자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선거 때만 되면 포털 사이트 뉴스 섹션에서 유권자들에 의해 가장 많이 클릭되는 기사, 그리고 댓글이 많이 달리는 기사는 여론조사 보도다. 그러다 보니 언론사들도 경마식 보도를 하면서 조사에 내재된 오차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선거가 8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론조사 보도는 선거 6일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여론조사에 포함된 다양한 오차를 감안해 각자의 표심을 결정하는데 참고 지표로만 활용해야 한다. 언론사들도 지지율과 관련한 여론조사 못지않게 정책과 관련한 여론조사에 더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언론사들은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오차를 감안하여 보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택수(리얼미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