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정애리 월드비전 친선대사 “전 세계에 290명 아이를 둔 나는 행복한 워킹 맘 입니다”

입력 2012-09-26 18:29


‘쯔쯔크’ 나의 첫 아이. 당시 15세 소녀였던 아이는 거리의 맨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2004년 5월. 그날은 눈이 내렸죠. 몽골의 겨울은 워낙 길고 또 춥기도 해 영하 40도는 기본이었습니다. 울란바토르는 중앙식 난방 시스템을 쓰는 도시여서 맨홀 안으로 그 난방 파이프가 지나가니 맨홀 안이 따뜻하기도 했겠죠.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맨홀 속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을 찾기로 했습니다. 현지 경찰들과 뚜껑을 열자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맨홀 안에서 14명의 아이들이 추위와 비를 피해 새까매진 모습으로 쥐들과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쯔쯔크와 아이들을 쉼터로 데려가 씻기면서 이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지구촌 어려운 아이들과 이웃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감사가 넘칩니다. 아픈 곳을 보여주면서 마음을 열어준 사람들도 감사했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준 순박한 사람들도 감사하고, 나의 마음을 받아주어서 감사하고, 힘든 업무임이 분명한데 단 한번도 싫은 내색 없이 아이들을 돌보고 사업을 진행하는 월드비전 직원에게도 감사하고,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1년에도 몇 번씩 해외를 방문하는 나를 이해해 주고 마음으로 동행해 주는 남편과 사랑하는 딸, 엄마께도 감사합니다. 또한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건강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전엔 사람들이 ‘몇 명의 엄마’라고 얘기하면 어쩐지 부담스러웠습니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싶어서요. 그런데 엄마란 말에는 ‘나눈다’라는 뜻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앞으로는 이 말을 자랑스러워하려고 합니다. 네, 저는 290명의 엄마입니다. 아니 더 있군요. 딸도 있고 국내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아이가 많은 저는 부자입니다.

그래서 일도 열심히 하는 워킹맘입니다. 어려운 곳을 방문해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여정이 쉽지는 않지만 어느새 아이들의 눈망울과 맑은 웃음이 그리고 눈물로 하루를 버티는 어려운 이웃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분주합니다. 다음에는 또 어디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요.

정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