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1) ‘유럽의 소말리아’ 알바니아 소녀 플로리나의 눈물
입력 2012-09-26 18:28
“지구촌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세요” ‘밀알의 기적’ 캠페인을 시작하며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690만명의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또한 한 해 평균 약 300만명의 5세 미만 아이들이 영양부족으로 생명을 잃고 있다. 국민일보와 월드비전은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알리며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밀알의 기적’ 캠페인을 펼친다. 오는 12월까지 탄자니아, 케냐, 몽골, 인도 등 지구촌 곳곳의 고통 받는 어린이들의 실상을 알리고 또 이들을 위해 교회와 성도들이 실천하고 있는 아름다운 나눔 이야기를 보도한다. 편집자
화마가 집을 삼킨 날 가족의 삶이 무너졌다
안개가 가득 낀 고원지대. 자갈밭 위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집 앞에 다갈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서 있었다. 긴 속눈썹에는 굵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눈물을 닦는 소녀의 거친 손은 그가 지니고 있는 삶의 고달픔을 이야기해주었다. 소녀의 이름은 플로리나(14), ‘푸르름’이라는 뜻이다. ‘유럽의 소말리아’로 불리는 알바니아에서 홀어머니, 4남매와 함께 흙바닥 지하창고에서 산다. 창고는 대낮에도 어두컴컴했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불이 났을 때 급히 꺼보려고 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2년 반 전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던 전기배선 때문에 플로리나의 집에 불이 났다. 60년 전에 세워져 낡고 허름했던 집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알바니아 가난한 산골마을엔 불을 끌 물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집이 화염 속에서 무너질 때 가족의 마음도 무너졌다.
1년 후 설상가상으로 플로리나의 아버지는 그들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노력해도 벗을 수 없는 가난의 굴레 속에서 그는 술과 담배를 끼고 살았다. 화재로 집을 잃고 나서 더욱 절망적이 됐다. 결국 아버지는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거리를 얻고 싶었지만 그 어디에도 그가 일할 곳은 없었다. 가끔씩 생기는 경작일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월드비전 알바니아지부의 미라 코타는 “알바니아 공식 실업률은 14% 정도지만 실제로는 더 높으며 플로리나가 사는 리브라자드 같은 외곽지역은 대부분 50%를 웃돈다. 본인 소유의 땅이 없으면 소득이 거의 없다”고 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나라’로 불리는 알바니아는 코소보 사태와 전쟁, 40년 동안 이어진 극도의 폐쇄적인 사회주의 독재정권으로 인해 발전에서 뒷걸음했다. 신처럼 군림하던 독재자 엔베르 호자는 군비 증강에만 열을 올렸다.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산업동력이 없고 소규모 경작에 의존하고 있는 이유다. 인구 400만명에 전체 국민소득은 157억 달러로 세계112위며 인구의 4분의 1이 최저 빈곤층에 속한다. 무엇보다 오랜 시련으로 인해 좌절감이라는 상흔이 크다.
의료 혜택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플로리나의 언니 두 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그동안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플로리나의 큰언니 릴자나는 현재 29세이지만 정신연령은 6세 정도다. 둘째 언니 알마(27) 역시 2살 때 앓은 홍역으로 뇌에 문제가 생겼다. 고열로 며칠을 앓았지만 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다.
알바니아 리브라자드 지역에는 보건소 하나가 겨우 있을 뿐이다. 1000명의 사람을 의사 1명이 담당한다. 의료비 때문에 사람들은 아파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두 아이 장애수당 60달러를 받는 게 수입의 전부입니다. 제대로 된 옷도 부족하고, 3끼 식사도 불안한데 아이들 치료는 사치입니다. 플로리나와 동생 알렉산더가 부디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하는 게 목표입니다.” 플로리나의 어머니 요니다(49)는 한숨을 내쉬었다.
플로리나처럼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과 그 가정을 돕기 위해 월드비전은 알바니아 리브라자드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일하며 노력하고 있다. 의료시설 마련 등 의료 서비스에 힘을 쏟고 있다. 더불어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과 심리치유 프로그램도 함께하고 있다. 월드비전 리브라자드 지역사업 총괄자인 이스메테는 “이곳 아이들은 마음을 잘 안 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서토론, 그림그리기, 악기교실 등 월드비전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들이 밝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플로리나 역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이 밝아졌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 꿈이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모든 것이 슬프게만 느껴졌는데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화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해요.” 플로리나는 지금 처한 현실은 어렵지만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주고 싶다’는 알바니아 소녀 플로리나. 그의 말에 가족들의 입가에는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피어났다.
소녀의 꿈이 싹을 틔우고 푸르른 녹음이 되는 날을 위해서는 따스한 햇볕과 힘이 되어줄 비료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의 사랑과 기도가 여기에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이 전 세계 모든 ‘플로리나’들에게 전해지기를.
글=김효정 한국 월드비전 홍보간사·사진=유별남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