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쉽게 먹던 동태전 만들기 이토록 힘들 줄은… ‘요남자(요리하는 남자)’되기 정말 어렵네

입력 2012-09-25 18:52


‘휘슬러 쿠킹 클래스’ 참가 남성 5명의 유쾌한 도전기

추석을 딱 일주일 앞둔 지난 일요일(23일)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8층에 자리한 ‘휘슬러 쿡카페’에서 열린 ‘국민남편을 위한 추석요리 쿠킹 클래스’. 앞치마는 둘렀으나 그동안 주방을 가까이 하지 않은 남성 5명의 손놀림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휘슬러 조리팀이 준비해 놓은 재료의 랩을 벗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쿠! 쏟아지겠네’‘이거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거야’ 궁시렁궁시렁….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애궂은 랩을 나무라는 분위기다. 이날 강의를 맡은 휘슬러 코리아 수석 셰프 최혜숙씨는 강의 내내 “천천히 하셔도 되요”“앗! 조심하세요”를 후렴구처럼 되풀이 했다.

‘국민 남편’이 되고자 한 이들이 도전한 요리는 매운전복갈비찜과 녹차동태전. 갈비찜은 의외로 쉽게 진행이 됐다. 고기 쑥덕쑥덕 썰고, 야채도 굵은 주사위 모양으로 깍둑깍둑 썰어 압력솥에 한데 쏟아 붓고 끓였다. 요리가 완성되자 지난달 결혼한 새신랑 최현경(31·환경설계사)씨는 싱글벙글. 매운전복갈비찜을 배워 추석상에 특별메뉴로 내놓기 위해 신청했다는 그는 이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만세를 불렀다. 아직 미혼으로 자취를 한다는 윤성근(33·교육업계 마케팅)씨는 “이렇게 재료를 한데 넣고 후루룩 끓이기만 하면 되니 너무 쉽다”면서 압력솥을 하나 장만해 여러 가지 요리를 해봐야겠다고 욕심을 냈다. 결혼 4년차로 차이니즈레스토랑(백경)을 운영하고 있는 백강현(34)씨는 윤씨를 보며 “압력밥솥은 시간도 절약되고 더 부드럽게 요리가 되는 것”이라고 요리 선배답게 한마디.

문제는 녹차동태전. 주부9단도 쉽지 않다는 스텐 프라이팬에 전을 부치는 것이니 초보 셰프들 얼굴에는 긴장감이 돌밖에. 최 셰프는 “스텐 프라이팬은 달군 다음 전을 부치면 눌어붙지 않는다”면서 중불에 프라이팬을 올려 달군 다음 물을 뿌려 ‘지지직’ 소리가 나면 전을 올려놓으라고 친절하게 일러 줬다. 이미 길들여져 있는 프라이팬이어서 눌어붙지는 않았지만 서툰 손놀림에 노란 계란 옷이 벗겨지기 일쑤인 데다 제 때 뒤집지 않아 타기까지 했다. 집안 분위기가 가부장적이어서 주방과는 멀리 떨어져 살았다는 송용철(34·한국에보트 MR)씨는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전을 어머님이 20년 넘게 혼자 부치셨다니 죄송스럽다”면서 이번 추석에는 돕겠다고 별렀다. 독립한 지 1년 됐다는 홍재화(34·소셜데이팅 쵸콕 마케팅 이사)씨도 “추석 때 어머님을 돕겠다”면서 ‘요남자’의 대열에 드디어 입성하게 됐다고 함박 웃었다.

요남자? 윤씨가 전을 뒤집으며 ‘요리하는 남자’의 줄임말로 요즘 요남자가 대세남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 밥상을 받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이 시대 젊은 남편들에게 요리는 남자를 더욱 남자답게 하는 필수 자격조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 홍씨의 귀띔. 그러고 보니 이번 클래스도 아내에게 등 떠밀려왔을지도 모를 기혼남성(2명)보다 대세남을 꿈꾸며 스스로 온 미혼남성(3명)이 더 많았다.

요남자들 사이에서 친절하게 요리를 지도하던 최 셰프는 “추석을 앞두고 남성들만을 위한 클래스를 기획하고도 참가신청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많은 남성들이 신청을 해왔다”면서 백화점 문화센터 요리 강좌에도 주말에는 남성이 25% 이상 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손에 익지 않아 망가진 전도 몇 개 되지만 완성해 차려 놓은 요리는 100점 만점에 90점으로 우등상감이었다. 모두들 한입 두입 맛보면서 싱글벙글. 압력밥솥 뚜껑 여닫는 데도 허둥지둥, 접시에 씌워놓은 랩 벗기는 데도 갈팡질팡 했던 이들의 솜씨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맛있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 남편들이여! 이번 추석에는 앞치마 한번 두르고 대세남 대열에 합류하심이 어떠실지.

전(煎): 명사

생선이나 고기, 채소 따위를 얇게 썰거나 다져 양념을 한 뒤,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