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美영사관 피습 재구성… 밤 9시30분 난입 5시간 공방전 ‘美국무부 허둥’

입력 2012-09-24 21:34


9·11 테러 11주년 기념일에 일어난 리비아 주재 미국 영사관 공격과 대사 사망은 피할 수 없는 참사였을까. 속속 드러나는 당시 정황으로는 인재(人災)였던 듯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잘못된 판단이 치명적인 공격을 불러왔다”고 보도했다.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의 미 영사관 정문 앞으로 무장 시위대가 모여든 건 11일 오후 8시30분이었다. 시위대가 발포하고 벽을 부수며 영사관 안으로 뛰어든 시간은 한 시간여가 흐른 9시30분. 그간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와 영사관 직원들은 소수의 경비병들과 함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후 약 5시간 동안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공격과 방어가 지속됐다.

그 시간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다. 스티븐스 대사 사망 추정 시각까지도 사실상 손놓고 있던 상태였다. 국무부 관계자는 “국방부가 구출작전을 위해 재빨리 군대를 동원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국무부로부터 지침을 받지 않은 국방부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외교 관련한 경비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말했다.

영사관은 공격에 대처할 만한 최소한의 준비도 해놓지 못하고 있었다. 리비아인 경비대원은 “스티븐스를 구출하기 위해 불길에 싸인 영사관 건물로 들어갔을 때 마스크도 소화기도 없는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결국 스티븐스는 쓰러진 채 방치돼 있다 신원미상 환자로 병원에 옮겨졌다.

지난해 시민혁명을 겪으면서 안전에 무감해진 대사의 자신감도 비극의 원인이라고 WSJ는 전했다. 해병대가 지속적으로 스티븐스에게 트리폴리에 머물라고 충고했지만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무부 관계자는 “스티븐스가 벵가지에 가면서 워싱턴과 상의하지 않았다”며 “국무부는 대사들이 근무국 내에서 여행할 때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집트 카이로 주재 미 대사관은 공격 하루 전인 10일부터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 있던 데 비해 리비아 외교관들은 별 정보를 얻지 못했다.

12일 새벽 2시 이후 시작된 무장세력의 두 번째 공격이 정보누설의 결과인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공격을 받은 영사관 직원들은 1㎞ 근방에 있던 비밀 안전가옥으로 피신했는데, 무장세력은 이곳을 정확히 타격했다. 국무부는 무장세력이 이곳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인지, 피신하는 영사관 관계자들을 쫓아가 알게 됐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