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과거사 사과] “아버지 무덤에 침뱉길 원하는 건 아닐 것” 이해 구해

입력 2012-09-24 19:10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24일 과거사 관련 긴급 기자회견 첫머리에 ‘아버지의 딸’이 아닌 ‘대통령 후보’로서 밝히는 입장임을 강조했다. 그동안 박정희 정권에 대해 공적인 평가보다 사적인 평가가 앞선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박 후보는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며 난감한 입장을 토로했고, “국민들께서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 뱉는 걸 원하시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며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한테는 무엇보다 경제발전과 국가안보가 가장 시급한 국가 목표였지만, 그 뒤편에 노동자들의 희생과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말로 ‘입장정리’를 시작했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으로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켰다”는 평가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상당히 진전된 것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사과 강도도 높아졌다. 또 “저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를 흉탄에 보내드리고 개인적으로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고 감정에 호소했다. 윈스턴 처칠의 명연설인 ‘그들의 가장 찬란했던 시간(Their finest hour)’에서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미래에 방점을 찍기도 했다.

박 후보는 ‘사과의 진정성’ 논란을 감안한 듯 8분 남짓한 기자회견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원고를 읽었다. 지난 7월 대선 출마 선언과 지난달 후보 수락연설에선 사용하지 않았던 프롬프터(원고 재생장치)도 이용했다. 원고를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정면을 응시하며 말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프롬프터 자막이 잘못돼 ‘인혁당’을 전혀 다른 사건인 ‘민혁당’으로 잘못 말하는 실수가 나오기도 했다. 민주통합당은 “사과 대상의 사건명조차 헷갈리면서 하는 사과가 진정성이 있느냐”고 비꼬았다.

원고는 박 후보가 주변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질의응답 없이 회견을 마무리했다. 박 후보는 회견장을 빠져나가며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을 받았지만 “말씀드린 내용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 “앞으로 실천하는 게 중요하고, 저의 진심을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새누리당은 박 후보의 회견으로 과거사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는 입장이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박 후보를 8년간 옆에서 모셨는데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수위의 발언은 처음”이라며 “오늘은 가슴으로 말한 것 같다”고 했다. 박 후보는 앞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통한 과거사 정리 작업과 정책 선거 행보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전태일재단 방문이 무산되며 사실상 중단된 대통합 행보도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김현길 유동근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