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성범죄 패턴화의 고리 끊어야

입력 2012-09-24 18:39


언론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성범죄 보도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범죄 보도가 과연 범죄 예방이나 경각심 고취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지난달 30일 발생한 나주 7세 여자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갖는 범죄적 특성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범인이 아예 피해 아동을 이불보쌈해 달아나 범행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취중이었다고 했지만 그의 평소 성격과 환경은 우리 모두를 고민스럽게 한다. 드러난 범인의 환경은 우리 사회 소외계층이나 취약계층이 겪는 특성들을 고스란히 지녔다.

공동체 이탈에서 비극 시작돼

그는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사회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가정을 꾸리지 못한 채 공사장을 전전하며 노동으로 생계를 이었다. 남는 시간은 대부분 컴퓨터 오락과 게임, 인터넷 음란물 등을 탐닉하며 보냈다.

이런 환경적 특성에 오래 노출된 사람의 행동은 충동적이며 죄의식이 마비되는 행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범인은 피해 아동의 집과 가족관계를 잘 알고, 범행 지역에 익숙한 이웃이었다. 그는 법정에서도 여전히 진정한 뉘우침이 없고, 심각한 성격적 결함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주에서 지난 11일 발생한 20대 여성 성폭행 살해 사건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범인은 달아났다가 공개 수배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어떤 범행 동기를 가졌는지 알 길이 없어졌다. 하지만 그의 경력과 생활도 나주사건 범인과 별 다를 게 없다. 그는 공사장에서 일하며 동거녀와 함께 생활했다. 희생된 여성과 같은 상가건물 3층에 사는 이웃집 남자였다. 그는 과거 친딸과 내연녀의 딸을 성폭행한 성범죄 전과자였다.

이렇듯 최근 흉악 성범죄자들의 행태는 패턴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피해자나 그 가족의 이웃이며,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대부분 혼자 살거나 불안정한 가정생활, 안정적 직업 없이 외톨이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각종 음란물에 중독돼 있고, 술도 가까이 한다.

불우한 환경, 사회적 패자, 꿈 상실, 소통하지 못하는 외톨이 등 이런 요소들을 우리 사회가 껴안지 못하는 데서 비극은 출발한다. 범죄 전문가들은 범죄자들이 충동, 행동장애를 여과하거나 교정시킬 주위 사람들이나 환경을 갖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가족, 이웃, 동료 등이 항상 주위에서 의견을 나누고 도왔다면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밝은 곳에서 긍정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사회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사회양극화 해소가 근본 처방

사회 양극화 해소에 대한 고민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 비용 감당이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은 매우 싸거나 전혀 돈이 들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그런 생활이 자칫 어떤 상황이 되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지점에는 양극화 갭을 줄이고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있다. 물론 성범죄 전과자들을 받아들여 재범 방지와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돕는 전문 시설이나 기관 확충도 절실하다.

강력한 처벌 분위기로는 일이 끝나지 않는다. 그동안 온갖 처방을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금의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성충동 약물치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등 여러 제도를 얼마만큼 유기적이고도 신속히 동원해 적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성범죄 패턴화의 고리를 끊는 핵심 열쇠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관심의 네트워킹과 사회안전망 강화다.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인간과 생명을 훼손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생각이 어떻게 비롯되는지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김용백 사회2부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