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폭행 친고죄 하루빨리 폐지돼야

입력 2012-09-24 18:35

양승태 대법원장이 성폭행 범죄의 친고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성폭행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서운 범죄이므로 친고죄를 유지할 사회적 근거도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장이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은 우리 사회에서 친고죄 폐지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친고죄 폐지안이 발의됐다가 부결된 만큼 정부와 국회는 신속하고 치밀하게 관련법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

성폭행 범죄에 대한 친고죄는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존속됐다. 하지만 지금은 성폭행 가해자를 두둔하는 조항으로 악용돼 입법취지가 무색해졌다. 2010년의 경우 성폭행 범죄 불기소율은 49.4%에 달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해 소를 취하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친고죄 조항 때문에 처벌 자체를 피해가는 범죄자가 많다는 의미다.

그러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하루 평균 53건의 성범죄가 발생하고, 성폭력 증가율은 살인·강도 사건보다 높아졌다. 성폭행 범죄는 합의하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돼 ‘성폭력에 관대한 사회’ ‘성범죄 공화국’이라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며 피해자를 다시 괴롭히는 일조차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성폭행 범죄가 살인·강도 사건과 마찬가지로 반(反)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고, 법 집행을 보다 엄격히 하기 위해 친고죄 폐지는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친고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도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성범죄자를 수사하거나 처벌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이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정신적 충격을 세심히 고려해야 한다. 가해자가 합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피해보상에 나서는 현실을 감안해 범죄 피해자 보상 제도를 강화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