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함께 나누는 보은의 행복
입력 2012-09-24 18:08
가난하고 배고픈 광주신학교(현 광신대) 시절, 나는 120원짜리 식권 살 돈이 없어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견뎌야 했다. 너무나 고독한 외톨이였다. 그때 볼품없고 가난한 나를 사랑으로 돌봐주시던 분이 고(故) 박종삼 목사님이셨다. 특히 목사님 댁에서 쇠고기 국을 끓이는 날이면 나를 불러서 “주의 종은 건강해야 한다”며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겨울방학 때 기숙사가 폐쇄되어 오갈 데가 없는 나를 불러서 여비로 쓰라며 용돈을 주셨다. 훗날 미국에 가셨을 때도 “소강석 전도사가 지금은 가난하고 볼품없지만 후원을 하여 잘 키워주면 반드시 한국 교회를 위해서 크게 쓰임 받는 종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금 운동을 해서 후원금을 보내 주실 정도였다.
내가 어찌 숱한 세월의 강물이 흘렀다고 해도 그때 베풀어 주신 박 목사님의 은혜를 잊을 수 있겠는가. 가난한 개척교회 시절에도 미국으로 가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비자가 안 나와서 찾아뵙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맨발의 소명자라는 닉네임을 가질 정도로 교회가 부흥하고 축복을 받아 처음으로 미국을 갈 때였다. 그러나 박 목사님은 이미 고인이 되어 계셨다.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박 목사님의 묘지를 찾아가 꽃다발을 바치며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목사님, 살아생전에 비행기 일등석 한 번도 안 타 보셨죠? 이제는 제가 목사님을 일등석으로 모셔서 전 세계를 다 여행시켜 드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먼저 가셨습니까?”
뿐만 아니라 미국 동부를 갈 때마다 목사님 사모님을 찾아뵙고 용돈을 드리며 인사를 올렸다. 그러면 사모님께서 제 손을 붙잡고 “우리 목사님이 많은 제자들을 사랑하고 도와 주셨는데 찾아오는 사람은 소 목사밖에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으셨다. 나는 과거에 은혜를 베풀어 준 분들을 잊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선물로는 환산할 수 없지만 정성껏 준비한 고액의 선물을 드리며 감사의 절로 보답한다. 광주신학교를 다닐 때 나를 도와준 분들에게도 명절이면 선물을 보내고 때로는 일부러 날을 잡아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기도 한다.
그러면 그분들이 선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 목사님의 마음이 중요하다며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큰 종이 된 것이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눈물을 쏟는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 은혜를 준 사람, 또 그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은의 인사를 올리는 사람….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인가. 그런데 지금 세상은 어떤가. 은혜 받은 이에게 보은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물고 뜯고 할퀴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히 한국 교회 안에 평생 은혜를 베풀어준 목회자의 은혜를 오히려 악으로 갚은 풍조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 그런 사람들은 말로가 비참하고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 어찌 은혜를 망각하는 자가 스스로 행복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이제 보은의 정신을 회복하자. 은혜를 은혜로 갚을 때, 그 사랑은 별처럼 빛나고 또 다른 꿈과 사랑을 만들어 줄 것이다. 또 함께 나누는 보은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