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영 (17) 내 컬럼비아 대학원 졸업장에 담긴 주님 뜻은?

입력 2012-09-24 18:23


과연 기적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던 통증이 사라지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는 일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내가 믿음이 좋고, 기도를 많이 하며 착한 일을 해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정말 그래서일까. 그러면 통증을 매일 느끼며 살았을 때는 주님이 나를 덜 사랑하셨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럼, 지금 고통이 없는 것은 내가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신 선물인가. 만일 보상으로 받은 거라면 기도든 선행이든 그 일이 무엇이든 오로지 그 일만 하고 노력하면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왜 내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자 매순간 노력했다.

허리통증이 완전히 없어지면서 활동반경은 나날이 늘어갔다.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3학년부터 학과 공부와 인턴 활동을 병행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살아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건강해진 몸으로 착오 없이 잘 해냈다. 더 이상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살지 않아도 된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도 그 일은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된 감동을 잊기도 전에 몸이 건강해지는 기적이 내게 왔다. 이 치유 체험은 항상 이성을 우선시하던 내 신앙생활에 감성과 영성을 더하는 계기가 됐고, 이는 균형 있는 신앙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

2008년 5월, 나약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남아 1년간 잠시 숨을 고르면서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아이비리그이자 사회복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이었다. 나는 1년 만에 석사과정을 마치는 향상반(Advanced Standing Course)에 지원했다. 이곳은 ‘하늘의 별따기’란 말대로 입학이 어려운 학교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도 입학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적을 체험했다. 어렵기로 소문난 이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며칠 동안 잠을 못 잘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 기쁨을 누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엄청난 학비에 대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공부를 끝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8월 첫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기본 경비와 환경은 만들어졌다. 등록금에 긴요한 최소 비용이 주변에서 지원되거나 일을 하면서 마련됐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명문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위기도 같이 주셨다. 하지만 나는 이 위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초졸 학력을 가진 내가 컬럼비아 대학원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성공인데 뭐가 더 걱정일까. 학비에 대한 위기감은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하나라도 더 배우자’는 비장한 결심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 난 공부에 대한 명분이 분명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프리카에 보낼 선물’로서 교육의 기회를 내게 주신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주님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말씀을 내 인생에 실현케 하셨다.

“해영, 참 잘했어. 그동안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달려왔어!”

2010년 5월 18일, 컬럼비아 대학원 256회 졸업생들 사이에 앉았다. 내게 칭찬을 했다. 나 스스로가 참 대견하고 마음에 들었다. 공부를 위해 뛰어넘은 수많은 장애물과 위기를 이 작은 키로 용케도 잘 넘었다. 나는 이날 다시 한번 ‘믿음이란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임을 되새겼다. 내 졸업장에는 수많은 사람의 도움과 격려, 그리고 아프리카 청소년들의 꿈이 담겨 있다. 이제 그동안의 목표였던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