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의 입맞춤’ 여왕이 돌아왔다… 박세리 2003년 이후 국내대회 첫승

입력 2012-09-23 19:36


박세리(35·KDB금융그룹)가 마지막 챔피언 퍼트를 홀컵에 집어넣었을 때 몇몇 선수가 샴페인병을 흔들며 우승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었다. 골프 경기에서 챔피언에게 물이나 샴페인, 맥주 등 음료수를 퍼부으며 축하하는 것이 관례. 하지만 어느 선수도 감히 까마득한 선배선수에게 샴페인을 들이붓지는 못했다.

한국여자골프의 맏언니 박세리가 돌아왔다. 박세리는 23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KDB대우증권 클래식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9개를 쓸어담고 보기는 2개로 막아 7언더파 65타를 쳤다. 합계 16언더파 200타를 적어낸 박세리는 허윤경(22·현대스위스)을 3타 차로 따돌리고 국내 팬들에게 우승으로 인사했다. 박세리의 합계 성적은 김하늘(24·비씨카드) 등 3명이 보유한 54홀 코스레코드인 12언더파 204타를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기록이다.

박세리가 국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03년 5월 MBC X-CANVAS 오픈 이후 9년4개월 만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까지 포함하면 2010년 5월 벨마이크로 클래식 이후 2년4개월 만의 우승이다. LPGA 25승을 달성한 박세리는 KLPGA 투어에서는 14승째.

한국 선수로는 처음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목표를 상실했던 박세리가 재기의 의지를 다진 데는 지난해 KDB금융그룹과의 후원계약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KDB금융그룹은 지난해 9월 수년째 후원사가 없었던 박세리와 연간 10억원(옵션 포함)가량을 지원하는 3년 후원계약을 맺었다. 한물간 선수로 치부되던 박세리와 거액의 후원계약을 맺게 된 데는 강만수 KDB금융그룹 회장의 뜻이 강하게 작용했다.

평소 박세리의 팬이었던 강 회장은 “외환위기 때 박세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듯 다시 한 번 일어서길 바란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박세리는 당시 후원 조인식 기자회견장에서 “이제는 외로움을 벗고 다시 한 번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며 울먹여 화제를 모았었다. KDB 측은 계약기간 중 1승만 거둬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박세리에게 전달할 만큼 사실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전 국민이 후원자’라고 생각이 바뀐 박세리는 지난 동계시즌 자신의 첫 골프 코치이기도 한 아버지와 착실히 동계 훈련을 하며 각오를 다졌다. 지난 7월 US여자오픈 공동 9위, 에비앙마스터스 8위 등 LPGA 투어 톱10에 4차례나 들며 샷감을 끌어올린 박세리는 마침내 국내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미국에서 우승한 것보다 감회가 다르고 훨씬 자랑스럽다”고 밝힌 박세리는 “고국 팬 여러분이 즐거워하시는 것을 보니 더 힘이 났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평창=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