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 제품, 내 입맛대로… 지금은 크리슈머 시대

입력 2012-09-23 19:27

소비자(consumer)들이 ‘크리슈머’(cresumer)로 진화했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크리슈머 활동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크리슈머는 ‘creative’(창조)와 ‘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로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의 생산 활동에 개입해 새롭고 발전된 형태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지난 20일 찾은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테이스트 키친’에서는 9명으로 구성된 주부평가단이 현재 판매 중인 A, B, C 세 가지 등급 게맛살 제품의 맛을 비교 분석하는 ‘관능평가’가 진행 중이었다.

주부들은 미각에 집중하기 위해 독서실처럼 앞과 양옆이 막힌 칸에 한 명씩 들어가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넣어주는 게맛살을 먹어보고 평가지를 작성했다. “A제품은 짠맛과 단맛이 모두 강해서 부담스럽다” “B제품은 단맛이 강해 느끼하고, 뒷맛이 텁텁하다” 등의 평가가 나왔다.

주부들은 관능평가가 끝나자 긴 직사각형 테이블이 있는 주방으로 이동했다. 설렁탕과 차돌 된장찌개를 시식할 차례다. 이들은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으면서 맛을 평가했다.

명절을 맞아 대형마트 3곳의 과일 추석선물세트를 비교 시식하는 시간도 가졌다. 주부들은 과일을 먹어보고 당도, 질감, 색, 향, 단단한 정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선물세트 포장 디자인과 재질, 용량, 가격도 평가했다. 1년째 주부평가단에 참여하고 있는 주부 강태임(44)씨는 “개인적으로 맛에 대한 안목을 넓히면서 스스로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며 “내가 맛을 조절한 제품이 상품으로 나온 것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부평가단은 서류심사 후 미각테스트를 거쳐 선발되며 1년 동안 활동한다. 이들은 판매 중이거나 개발 중인 상품에 대해 평가하고, 상품은 이 평가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얻어야 출시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수진(29·여)씨는 “지금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대부분 주부평가단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슈머 활동은 다양한 업계에서 도입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고 기업에서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동부건설은 지난 3월부터 주거상품을 개발하는 크리슈머 그룹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KT&G에서 소비자가 직접 겉포장을 디자인한 담배를 제품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참여해서 상품을 만들거나 기존에 있던 제품을 발전시킬 경우 기업 입장에서도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크리슈머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