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문화전쟁과 표현의 자유

입력 2012-09-23 19:17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조롱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 세계가 문화전쟁에 휩싸일 기세다. 미국에서 제작돼 유튜브를 통해 급속히 전파된 동영상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9·11 테러 11주년인 지난 11일에는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미국 대사가 무장 시위대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파키스탄의 한 장관은 동영상 제작자를 살해하는 자에게는 10만 달러에 달하는 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했고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를 죽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무슬림의 순진함’이라는 이름의 조야하기 짝이 없는 13분짜리 동영상으로 발생한 시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벌써 50명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19일 프랑스의 풍자지 ‘샤를리 엡도’에 실린 나신의 무함마드 만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시위 발생이 우려되는 지역에 경찰을 배치하고 20여 무슬림 국가의 공관과 문화센터, 국제학교에 잠정적인 휴무 명령을 내린 프랑스 정부의 조치는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수단의 외교공관이 공격을 당했던 독일에서는 한 풍자지가 이달 말 ‘무슬림 문제’와 관련된 기사를 출판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동영상 때문에 발생한 반미 시위가 반서방 시위로 비화될 조짐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세력은 무함마드를 비방하는 졸렬한 ‘문화전쟁’을 극단적 주장을 관철시킬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 프랑스 최대 극우파 정당의 지도자 마린 르펜은 지난 금요일 샤를리 엡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면서 상점이나 대중교통, 심지어 거리에서 히잡 같은 이슬람 여성의 베일, 키파로 불리는 유대인의 모자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프랑스 정부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나신의 무함마드를 묘사한 만화를 출간한 샤를리 엡도의 명분은 표현의 자유다. 이 풍자지의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만화가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거나 생각할 거리를 주기 위한 것이지, 특정한 종교를 모욕할 의도는 없다고 못 박는다. 사실상 이 주간지는 유대교, 기독교 역시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도 무함마드나 일부 이슬람 세력을 풍자할 때만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 편집장의 주장이다. “우리는 매주 만화를 출판합니다. 그런데 만화가 무함마드나 급진적 이슬람을 묘사할 때만 사람들은 그것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입니다.”

일부에서는 표현의 자유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모욕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현의 자유와 모욕의 경계는 어디일까. 샤를리 엡도를 옹호하고 나선 마린 르펜은 얼마 전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를 고소한 적이 있다. 파리 공연에서 마돈나가 마린 르펜과 나치의 상징을 겹쳐 보이게 만든 영상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18%의 지지율을 획득한 여성 정치가를 나치와 연결했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돈나의 입장에서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닐까?

표현의 자유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권리이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는 심각한 책임이 따른다. 예를 들어 독일과 프랑스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법안이 상정될 때마다 심각한 논쟁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연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실제로 역사가들의 연구가 위축되거나 왜곡된 적이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는 유대인들에게 견딜 길 없는 모욕일 것이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형상화 자체를 금기시하는 무슬림들에게 조롱 투의 동영상과 만화가 극도의 모욕감을 유발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이야말로 특정 종교의 전통을 공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노력과 표현의 자유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세계인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아닐까.

김용우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