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삶의 지루함을 느끼는 인생에게

입력 2012-09-23 17:52


아이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는 것이 내게는 중노동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니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가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면 휴식이 아니라 고역이다. 특히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내 적성과 맞지 않는다. 놀이기구를 타겠다고 줄서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똑같은 생각을 한다. 왜 돈 내고 저 고생을 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왜 줄을 서서 저 고생을 할까?

사실 대답은 있다. 사람에게는 짜릿함을 시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위니캇(D.Winicott)이라는 심리학자는 ‘real’과 ‘unreal’이라는 말로 이것을 설명한다. 무언가가 익숙해져서 일상이 되어버린 일은 ‘unreal’하다는 것이다. 즉 신선하지 않고, 생생하지 않아서 살아있는 기쁨을 제공하지 못한다. 거기서 지루함과 싫증을 느끼고 자신의 삶이 ‘real’ 해지도록 추구한다는 것이다. 즉 신선함과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싫증을 느끼는 데 천재적이다. ‘싫증’이란 인간이 가진 고질병이다. 특히 남자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남자는 집에 카메라가 자그마치 5대란다. 어떤 이는 옷에 대한 싫증도 못 말린다. 멀쩡한 차를 굳이 바꾸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을 보라. 가만히 있는 가구를 옮기고 싶은 욕구는 왜 일어날까? 최근에 부쩍 많은 젊은이들이 해병대를 지원하는 현상을 보라. 암벽등반, 번지점프, 롤러코스터, 위험하지만 짜릿한 순간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상에 싫증을 느끼고 지루해져서 이제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몸부림이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전1:7) 인간은 피곤해한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지루함 때문이다. 어딘가에 신선하고 새로운 것이 없는가 하고 오늘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한 행복한 사람의 고백을 들어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사는 것이 날마다 새롭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고백이 비슷하다. 그것은 똑같은 나무와 풀이었는데 하나님을 만난 후 전혀 새로웠다는 것이다.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똑같은 일상이 새롭게 다가오고 날마다 설렘과 신선함을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말하는 사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놀이동산에서 줄선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피곤하고 지루하고 재미없어하는 인생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는 듯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롤러코스터도 좋지만 그보다 더 신선하고 새로운 길이 있다고. 아니 영원히 새로운 참된 길이 있다고. 오늘도 이 복음이 나를 가슴 설레게 한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