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예수의 아내? 영지주의 문학의 카오스적 상상력!

입력 2012-09-21 18:17

며칠 전 자그마한 고문서 단편이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로 7.6㎝ 세로 3.8㎝로 명함 크기 정도인 이 단편의 앞면에는 예수와 제자들의 대화가 4세기 콥트 사이딕 방언으로 9줄 정도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 조각은 라디오, TV는 물론이고 내외신 보도의 광범위하고 집요한 관심사가 되었고 세간의 말초신경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4∼5번째 줄의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4번째 줄에 <…예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 아내가…>라고 되어 있고, 5번째 줄에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보인다(www.hds.harvard.edu).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의 교수인 캐런 킹(58) 박사는 이 문서를 지난 18일 로마에서 열린 학회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영지주의 문학가들의 소설적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킹 박사이기에 그녀 스스로 이 문서의 제목을 ‘예수 아내의 복음’(The Gospel of Jesus’s Wife)이라고 선정적으로 명명했다.

영지주의는 1∼4세기의 혼합주의 종교운동으로 자유로운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해서 엄청난 양의 종교적 소설 혹은 공상적 종교서를 쏟아내었다. 영지주의는 문학적 상상력과 종교적 운동, 이 둘의 만남으로 생성되었던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 철학의 영과 육의 이원론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런 바탕 위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유대교 신화, 심지어 신구약 성경까지도 뒤범벅하여 기이하고 야릇한 새로운 신화를 끝없이 창작했다.

1945년 12월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Nag Hammadi)에서 4세기 중반 경에 필사된 많은 문학서들이 발견됨으로 영지주의 운동의 존재가 더욱 분명해졌다. 아쉽게도 이집트 농부가 그게 뭔지 모르고 상당 부분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바람에 많은 분량이 사라졌지만 그런 대량 학살의 운명을 가까스로 피해 살아남았던 일부 문서조차도 방대하다. 남은 문서가 모두 12권의 두루마리인데 각 두루마리에는 3∼7권씩 모두 52권의 책이 들어있다. 신약성경이 27권의 책인 것에 비해 영지주의 문학서들이 얼마나 방대한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집트 농부가 실수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수백 권의 영지주의 문학서를 알고 있으리라.

영지주의자들의 문학작품은 주로 ‘…복음’, ‘…묵시록’ 등의 제목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빌립보복음’, ‘도마복음’, ‘베드로계시록’, ‘바울계시록’, ‘야고보계시록’ 같은 것이다. 얼마나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지 ‘도마복음’의 저자로 제시되는 도마는 예수의 제자 도마가 아니라 예수의 쌍둥이 형제 도마로 되어 있다. 예수의 쌍둥이 형제 도마라니 우리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인물설정이지만 영지주의자들은 이런 식의 창작을 기꺼이 즐겼다. 그들에게 역사적 사실이란 역겨운 쓰레기더미 같은 것이었으므로 인물을 아무렇게 설정하는 데에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캐런 킹 박사가 공개한 문서에 나오는 ‘나의 아내’란 표현도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문학적 상상력에서는 가상의 인물을 어떻게 설정하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지주의 문학서 중에는 ‘하와복음’이란 것도 있다. 아담의 여인 하와가 무슨 복음서를 썼다니 해괴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런 카오스적 상상력은 오늘날 엽기적인 것이 그런 것처럼 열렬한 팬이 있기 마련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양성합일의 천상적 존재가 어둠의 세력(아르콘)에 속아서 둘로 분리되면서 반은 천상에 남고 나머지 반은 육체라는 비좁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런 다음 어둠의 세력은 성관계에 탐닉하여 육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반쪽 영혼을 성(性)이라는 사슬로 육체에 꽁꽁 얽어맨다. 이런 식의 이원론 때문에 인간의 육체를 경멸했고 성관계에 의존하여 인간이 시간과 역사 속에 존속하게 되는 것을 괴로워했다. 결혼과 출산이 인류의 노예생활을 연장한다고 믿었기에 결혼을 거부하고 설령 결혼한 경우라도 성관계와 출산을 기피했다. 이들에게 있어 궁극적인 구원이란 구세주의 도움으로 영혼이 천상에 올라가 그곳에 남아 있던 다른 성(性)의 반쪽 자신과 결합하여 양성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기에 때로 영지주의 작가는 시인이 된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네가 있는 곳에 내가 있노라. 나는 만물 속에 존재하니, 네가 원하는 곳 어디라도 너는 나를 불러 모으고, 너는 나를 불러 모으면서 너를 불러 모을 것이다.’(하와복음)

어떻게 되었든 간에 창작의 자유가 있는 것은 그런 자유가 없거나 억압당하는 것과는 비할 바 없이 나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서 허구적 인물 ‘예수의 쌍둥이 형제 도마’를 창작하건 그보다 훨씬 자극적인 공상적 인물 ‘예수의 아내’를 만들어 내건 간에, 허구는 허구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다빈치코드’처럼 예수의 후손이 메로빙거 왕조의 조상이 되었다는 식의 문학적 허구를 미친 듯 수천만 명이 소비하는 것이 오늘날의 인류문화인데, 2000년 전의 문학이라고 해서 그런 권리를 박탈할 수도 없지 않은가. ‘다빈치코드’를 허구적 창작으로 보듯 영지주의 문학을 소설적 허구로 받아주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며, 분명히 말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영지주의 문서가 발견된 나그 함마디는 4세기 파코미우스 수도회의 한 수도원에서 불과 3㎞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 지리적 정보를 바탕으로 학자들은 그 수도원이 영지주의 문학을 필사해서 시장에 공급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전체 필사본 및 다량의 백지 파피루스를 쓰레기장에 폐기했다는 가설을 주장하곤 했다.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그 옛날 공주(共住)수도자들조차 유혹받을 정도로 카오스적 상상력은 시장성이 좋았던 것일까?

<한영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