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전정희] 사치의 중산층

입력 2012-09-21 18:24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식을 키우고 또 자식을 낳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그 위에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아파트라는 집이 상상할 수조차 없도록 비싸다는 것이다.’

그 ‘놀랍도록 비싼 아파트’ 값이 곤두박질이다. 소설가 조정래는 1999년 작 ‘비탈진 음지’라는 작품에서 이같이 묘사했다. 지상에서 방 한 칸 얻기 위해 아근바근 노력해 겨우 마련한 30평대 집 한 채가 맥없이 추락하고 있다. 근대화·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부의 축적 수단이면서도 가치관 혼란을 가져다 준 양날의 칼이 아파트였다.

요즘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 나르기 하는 글 중 하나가 ‘중산층의 기준’이다. 어느 연봉 사이트가 직장인을 조사한 결과라고 하는데 너도 나도 공감하는 모양이다. 한데 그 기준 첫째가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99㎡) 이상 소유’이다. 다음이 ‘월 급여 500만원 이상’ ‘2000㏄급 중형차 소유’ ‘예금액 잔고 1억원’ ‘해외여행 1년에 한 차례 이상 다닐 것’ 등 다섯 가지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개는 봉급을 모아 아파트 평수를 늘려 나가며 부를 축적했다. 아니 축적했다고 ‘보았다’. 백이면 백, 오를 것을 예상하고 대출 받아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래서 30평만 넘으면 중산층에 진입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나머지 네 가지 조건은 첫째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옵션과도 같다. 정말로 근 40여년은 아파트 소유가 중산층 진입이라는 등식을 낳았다. 감당하기 힘든 대출을 받아 집을 산 하우스 푸어였음을 최근에 알았지만 말이다.

하우스 푸어는 ‘정서적 중산층’의 붕괴다. 경제성장의 중추 역할을 해온 그들이 지닌 가치는 절제된 소비와 합리적 생활 양식을 유지하면 누리는 안정적 삶이었다. 통계청이 밝힌 우리나라 중산층 64%, 현대경제연구소 조사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답한 46%의 간격은 기준의 차이에 불과하다. 문제는 내가 중산층에서 탈락했다는, 또는 탈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이 같은 위기와 정서적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카드를 내밀고 있다. 대선 후보도 너나없이 중산층을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난 19일 출마 선언한 안철수씨는 “중산층이 무너졌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 중산층의 붕괴를 여·야, 진보·보수, 세대, 노사, 성별을 떠나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귀책사유의 문제로 보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수렁이 있다. 높은 임금, 중형차, 1억원 이상 잔고, 한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정부만 책임질 일은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사치에 속하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사치는 필수품 지출을 초과하는 모든 지출을 말한다. 정부는 다만 서민층의 붕괴에 주목하고 그 붕괴를 안간힘으로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SNS로 퍼지는 ‘중산층의 기준’ 핵심은 바로 다음에 있다. 한국 사례와 함께 제시된 프랑스, 영국, 미국의 다섯 가지 기준이다. 세 나라 모두 ‘사회적 약자를 도울 것’ ‘불의에 맞설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 외에 ‘남들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프랑스)’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영국)’ ‘테이블 위에 정기구독 비평지가 놓여 있을 것(미국)’ 등이었다. 물질을 중산층의 가치로 보지 않은 것이다.

사치는 자본주의를 살찌우게 한다. 그러나 같은 방식의 물질 사치는 허무와 상대적 박탈감만 낳을 뿐이다. 주장과 신념을 갖는 것, 이제는 변화되어야 할 중산층의 덕목이다.

전정희 정책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