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訪韓 의사 밝힌 일왕, 日 정부 전향적 자세를
입력 2012-09-21 18:27
일본 여성 주간지 ‘여성자신’ 최신호가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언젠가 우리(일왕과 왕비)가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해 관심이다. 일왕은 외교 현안에 관한 정기적인 설명을 듣기 위한 지난 4일의 접견 자리에서 쓰루오카 고지 외무성 종합외교국장에게 이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 일본 외무성은 확인을 거부했고 우리 외교통상부는 의례적인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01년에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2005년 사이판 방문 때는 한국평화기념탑에 헌화했다. 왕세자 시절인 1986년에는 방한을 추진했다가 부인의 건강 때문에 포기했다.
그의 방한은 독도 영유권 문제와 일본군위안부, 교과서 왜곡 등 한·일 두 나라의 껄끄러운 현안을 부드럽게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독도를 전격 방문한 직후인 지난달 14일 일왕이 방한하려면 진심으로 사죄하라고 언급한 바 있어 두 나라 간 물밑 접촉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일왕은 92년 중국을 방문해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힌 적이 있다.
문제는 일왕의 희망과 달리 일본 정부가 그의 방한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일본 헌법은 일왕의 해외방문을 ‘국사행위’로 규정해 정부가 최종 결정하게 돼 있다. 즉, 일왕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기관으로서의 행위’인 국사행위이기 때문에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노다 총리가 이달 하순 유엔총회 연설에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영토 제소 의사를 밝힐 경우 양국의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따라서 일왕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갈등이 풀릴 수도 있다는 기대가 쉽게 성사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이유다. 아울러 당국도 자존심을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왕 방한의 지혜를 짜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