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사이’의 힘

입력 2012-09-21 17:58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너랑 나 사이에 왜 그래?” ‘사이’, 참 친근한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신비로운 말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자라도 혼자서는 ‘사이’를 만들 수 없으니,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우리가 마주 대하지 않는 한은 ‘사이’를 지어내실 수 없을 겁니다. ‘사이’는 이렇게 둘 이상이 마주해야 비로소 생겨나는 관계의 공간이에요. 고독하고 고단한 개인별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 서로의 곁을 의미 없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쁜 도시인들은 이 ‘사이’를 점차 잃어갑니다. 나의 영역도 너의 영역도 아닌, 우리가 의미 있게 마주보는 순간 탄생하는 제3의 공간 ‘사이’를 만들지 못해서,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자꾸 공격하고 상처 입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영역을 침범할까 봐, 내 이익, 내 권리, 내 기회를 행여 네가 가로채 갈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상대를 공격할 날카로운 말과 행동을 준비하면서….

문득 20세기 대표적 기독지성이었던 함석헌의 글귀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만 사람이 됩니다.” “자아, 자아 하지만 자아는 결코 홀로가 아닙니다.” “나들은 서로 알아보는 것이고 알아봄으로 사는 것입니다.” 알아봄! 그렇지요. 사람은 서로 알아봐줌을 양식으로 삼아 자라는 생명이지 싶습니다.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고 날선 비난을 하면 다치는 것은 너만이 아닙니다. 나도 다칩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기에 ‘사이’를 만들어야 비로소 행복해집니다.

‘나’만을 주장하고 고집해서는 절대로 ‘사이’라는 놀라운 관계성의 공간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나의 영역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너에게로 다가갈 때, 너를 알아보아주려 따듯한 눈빛과 열린 귀를 준비할 때, 서로가 그리할 때 비로소 ‘사이’가 존재케 됩니다. 나의 것도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닌 이 ‘사이’ 공간은 나를, 그리고 너를 변화시키는 경이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은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백소영<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