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불편한 진실] 신평사 ‘전가의 보도’…수천억 왔다갔다
입력 2012-09-21 21:28
기업 죽이고 살린다
국가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신용등급은 매우 중요한 지표다. 유동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 신용등급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수백억∼수천억원의 돈이 더 드느냐 줄어드느냐 하는 실제적인 문제가 된다. 게다가 신용등급이 좋다는 것은 ‘좋은 기업의 자격’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절대 간과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경제가 세계에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도 늘고 있어 신용등급 관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 선두주자인 포스코는 요즘 신용등급 사수작전에 나섰다. 지난 7월말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앞으로 6개월 내에 포스코의 신용등급(현재 A-)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등급을 유지하려면 5조5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최근 철강 경기가 나빠서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다. 무디스, 피치도 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포스코가 외부 차입 없이 약 3조5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용등급을 유지하려면 나머지 2조원은 차입해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포스코는 지난 4월 SK텔레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등의 지분을 팔아 5800억원의 현금을 마련했고, 최근에는 자회사 대우인터내셔널의 교보생명 지분 492만주도 해외에 매각해 1조2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진행 중이다.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포스코특수강은 기업공개(IPO)를 할 예정이고 비주력 계열사 구조조정도 추진 중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 관계사 구조조정을 연내에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그만큼 신용등급 사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신용등급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직결된다. 즉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은 돈을 떼일 우려가 낮기 때문에 시중에서 돈을 빌릴 때도 유리한 조건에 빌릴 수 있다. 아울러 기업이 건강하다는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확보할 수 있다.
회사채 5000억원 발행에 나선 삼성중공업은 최근 한국기업평가로부터 회사채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상향조정 받으면서 금리를 낮출 수 있게 됐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월 7000억원 회사채 발행을 할 때 3년 만기물은 4.16%, 5년 만기물은 4.39%의 금리를 적용받았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등급 상향으로 대외신인도가 올라가면서 금리가 내려가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시중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진다. 금리도 높아져 회사에 부담이 커진다. 특히 대기업보다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신용등급 강등은 올해 들어 크게 늘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AA∼AA+’ 등급 회사들의 올 상반기 회사채 발행액은 10조38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조7097억원보다 49.62% 증가했다. 반면 이보다 낮은 ‘BBB+∼A-’ 등급 회사들의 상반기 발행액은 3조335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4조1420억원)보다 19.48% 줄었다.
금융투자협회 차상기 채권시장팀장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나타나면서 투기등급 기업에 대한 위험 부담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 이들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쉽지 않다”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이 점차 글로벌화 되면서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에 점점 민감해지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한 번 신용등급을 정하면 쉽게 바꾸지 않지만 외국 평가사들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변경하고 있어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국내 대표 통신사인 KT의 경우도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최고등급인 AAA를 유지하고 있지만 S&P는 6월 KT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렸다. 국내 통신 산업 환경이 성숙기에 돌입하면서 악화되고 있다는 이유다.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길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재무제표다. 평가사마다 일부 다른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평가의 70∼80%는 재무제표를 기초로 한다. 여기에 기업이 속한 산업의 현황이나 경영상의 특이사항 등 비재무 요소도 평가에 반영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기준이 기업가치 전체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