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불편한 진실] 무소불위 권력 ‘빅3’ 신용평가사… 국제사회 볼멘소리

입력 2012-09-21 18:30

“전 세계적으로 신용평가사들의 등급평가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대가 마련되고 있다.”

지난 1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유럽 9개국의 신용등급을 무더기 강등하자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이를 비판한 내용이다. 그는 지난해 7월 무디스가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으로 강등시켰을 때도 “신용평가사들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드러냈다.

무디스, S&P, 피치 등 국제 3대 신용평가사에 대한 유럽의 시선이 싸늘해진 지 오래다. 신용평가사들은 국가채무를 빌미로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듯 잇따라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참다못한 유럽은 영·미권 신용평가사들의 ‘횡포’에 대한 견제 장치 마련에 나섰지만 이렇다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예외적 상황’에서는 신용평가를 금지하고 기업들이 정기적으로 신용평가사를 교체하도록 강제하는 방안 등을 포함하는 규제안 초안만 만들어 놓은 상태다.

신용평가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애초 투자부적격인 부실 주택저당증권(MBS)에 최고등급을 부여해 엄청난 손실을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유럽 재정위기를 기회삼아 다시 부활했다.

신용평가사에 대한 불만은 커져가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에는 아직까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투자기관에 대한 신용평가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는데다 3개사의 시장 점유율이 95%여서 투자자들은 이들의 평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 만에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된 ‘모범생’ 한국도 신용평가사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6∼12단계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이러한 ‘낙인효과’에다 북한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경제상황을 늘 저평가해 왔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지난 14일 S&P의 한국 신용등급 상향 관련 브리핑에서 “정보기관과 함께 싱가포르에 직접 가서 S&P 애널리스트에게 북한 문제를 상세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한 국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와 정보기관까지 총출동해서 신용평가사를 설득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용평가사는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을 연결하는 핵심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금융위기가 실물경기로 옮겨 붙은 이후에도 신용평가사들이 강도 높은 재정긴축을 요구하며 신용등급을 강등시키면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경우 저성장과 소비 위축으로 경기침체는 장기화되고 있지만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책을 쓸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신평사들의 눈치를 보며 재정건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