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넘어 희망을 연주하다… ‘슈퍼스타 K’ 화제 이아름씨 노래에 장내 숙연

입력 2012-09-20 19:23


노래가 시작된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메말라버린 시신경이지만, 한빛예술단의 ‘블루오션’ 단원 이아름(21·여·시각장애 1급)씨의 눈앞엔 깜깜한 어둠 대신 새하얀 ‘얼음꽃’들이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한다.

“나를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요. 그 안에서 또 피어날 나를 dream.”

20일 오전 서울 양평동 한강미디어고등학교 무대에 선 이씨가 가수 아이유의 ‘얼음꽃’을 노래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눈을 감고 노랫말과 선율을 음미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이씨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피아노의 형체를 알기도 전인 세 살, 무심코 누른 건반소리에 피아노를 배운 이씨에게 노래는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통로이자 희망이다. 이씨는 최근 한 케이블 TV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4’에 출연해 ‘절대음감’ 소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오른쪽 귀에 지휘자의 음성이 들리는 수신기를 착용(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의 경우 지휘자의 손동작을 볼 수 없어 지휘자가 송신기로 보내는 음성을 듣고 이해)한 채 곡 중간중간 트라이앵글과 심벌즈로 음율을 살리던 이경신(28·시각장애 2급)씨의 손끝에선 일반인 전문연주자 못지않은 자신감과 단호함이 느껴졌다. 악보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실수 투성이였다는 이씨는 “리듬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 곡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한다”며 “음악을 한 뒤로 내성적인 성격이 자신감 있는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난타’를 연상시키는 타악기들의 앙상블로 힘차게 문을 연 이날 공연은 시작부터 학생들의 시선과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특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테마곡 ‘지금 이 순간’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 가수 ‘다비치’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등 익숙한 대중음악곡들이 흘러나올 땐 마치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보듯 함성을 지르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동영상을 찍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한빛예술단은 안마사나 침구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열어주기 위해 2003년 창단된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다. 일반인에 비해 청각이 발달해 절대음감을 가진 이가 많다는 장점을 감안해 오케스트라는 물론 합창단과 중창단, 밴드까지 운영하고 있는 한빛예술단은 매년 15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그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2010년 장애인문화예술단체로는 처음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공연 내내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1학년 박상진(16)군은 “눈이 아닌 손으로 악보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아예 악보를 통째로 외워 연주하는 단원들에 감동 받았다”며 “특히 정확한 음을 낼 수 있는 위치를 파악해야 비로소 정확한 소리가 나는 타악기 연주자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3학년 마해솔(18)양은 “요즘 진로문제로 고민도 많고 좌절을 느낄 때도 있었는데 오늘 연주를 듣고 위로가 많이 됐다”며 “수능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집 한빛예술단 사무국장은 “‘한빛예술단의 공연을 보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다’는 이들의 반응을 볼 때면 저절로 힘이 난다”며 “일회성 관심보다는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