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과잉 비판 이는데… ‘교통·에너지·환경세’ 3년 연장 논란

입력 2012-09-20 21:45


3번 국도 문경새재를 관통하는 이화령터널과 중부내륙고속도로는 74㎞를 서로 마주보고 나란히 달린다. 이화령 옛 고갯길까지 치면 3중 중복도로다. 미시령터널과 미시령옛길, 그리고 동홍천∼양양 고속도로도 2015년 완공되면 44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게 된다. 이런 주먹구구식 통행량 예측을 바탕으로 한 과잉·중복도로 건설을 가능케 하는 게 바로 ‘교통·에너지·환경세’다. 휘발유 ℓ당 475원, 경유 ℓ당 340원씩을 운전자로부터 거둬들인 돈이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말로 끝날 예정인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유효기간을 2015년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하자 녹색당과 환경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교통·에너지·환경세 무엇이 문제인가=교통·에너지·환경세는 1994년 교통시설의 확충, 대중교통 육성사업 등을 위해 태어난 목적세다. 2011년 기준 11조6000억원인 세수의 80%가 교통시설특별회계(교특회계)에 편입되고 있다. 현재 교특회계의 43∼49%는 도로 부문에 배정된다. 매년 5조원 안팎의 큰 돈을 국도와 고속도로 신설 및 확장에 사용하다 보니 지방을 중심으로 ‘도로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2008년 당시 교통세를 폐지하자는 요구가 정부안에서 제기됐지만, 부처 간 힘겨루기의 결과 ‘교통·에너지·환경세’로 명칭이 전환됐다. 누더기 법 이름이 말해주듯 부처 간 이해관계의 절충책이었다. 세수의 배분비율은 환경부가 15% 지경부가 3%를 각각 떼어가는 쪽으로 변경됐다.

녹색당은 “비효율적 예산 투자와 자원 낭비, 국토 난개발을 초래하는 교특회계는 폐지하고 일반회계와 통합해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효율성 강화, 기후변화 대응, 녹색교통 확산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대기환경학회가 지난달 29일 개최한 ‘대기환경관리 선진화포럼’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제시됐다. 소비자단체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낮춰서 운전자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중복도로 실태=지난 수십 년간 국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도로 분야에 집중돼왔다. 그 결과 1970년대 초반 4만㎞였던 국내 도로 연장은 이제 10만㎞를 훌쩍 넘어섰다. 같은 기간 철도는 고작 200㎞가 늘어난 3400㎞에 불과하다.

중복투자도 심각하다. 3번 국도의 이화령터널은 하루 4만3000대가 다닐 것으로 예상됐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 이후 통행량이 하루 2800대로 급감했다. 정부는 통행료 수입이 급감한 민자사업자로부터 600여억원을 주고 이화령터널을 인수했다. 미시령터널도 적자가 심각해 35년간 1100억원의 손실을 보전해 줘야 하는 강원도는 최근 미시령관통도로의 국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2008년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고속도로와 국도 가운데 중복 투자된 구간은 8개 노선 320㎞나 됐다. 예산 낭비만 8조6000억원에 이른다.

◇도로가 부족한가=전병목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교특회계 도입 당시와 달리 도로가 많이 건설됐고 에너지 사용의 사회적 비용이 중요해졌는데도 교특회계에 대한 높은 배분비율의 근거는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전 연구위원은 이어 “국토해양부는 국내 기반시설의 국제순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복지부문이나 공공사회지출 부문은 더 낮다”고 지적했다.

국토해양부는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도로노선 길이의 국제순위가 24위, 철도는 25위, 공항은 4위, 항만 23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사회지출 수준은 국내총생산(GDP)의 7.5%로 다른 선진국의 2분의 1∼3분의 1에 불과하다.

◇대안과 전망=전 연구위원은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폐지하고 백지상태에서 교통혼잡 비용, 대기오염 및 온난화 관련 비용 등을 감안해 각 용도와 배분비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강광규 환경영향평가본부장은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시효가 대선을 앞두고 연장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면서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건설업계, 국토해양부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므로 차기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 세금을 폐지하거나 용도를 변경해 환경개선과 온실가스 감축에 주로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