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법망 비웃듯… 대기업 퇴직연금 계열사 몰아주기 여전

입력 2012-09-20 19:17


주요 10대 재벌그룹(대기업집단)이 올 들어 5개월 동안 계열 금융회사에 몰아준 퇴직연금 규모가 7900억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부터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재벌의 퇴직연금 몰아주기는 전혀 과세할 수 없는 등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어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0일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금융계열사에 퇴직연금을 많이 몰아준 상위 10대 기업집단이 올해 1∼5월 금융계열사에 맡긴 퇴직연금 규모는 7873억원에 달했다. 기업집단별로 보면 롯데그룹이 계열사인 롯데손해보험에 지난 5월까지 전체 퇴직연금의 95%인 4118억원(올해 5월 기준 총 누적액)을, 현대자동차는 HMC투자증권에 전체의 91%인 3조390억원을 맡겼다. 삼성그룹은 계열사인 삼성화재·생명보험·카드사에 모두 4조5092억원을 몰아줬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으로는 단 한 곳의 기업도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일감 몰아주기로 과세를 하려면 금융계열사가 계열 기업집단으로부터 얻은 이익이 한 해 총 매출액(수입금액)의 30%를 초과해야 가능한데, 현재 금융계열사 중 전체 보험수입료 대비 퇴직연금 비중 자체가 30%를 넘는 곳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기준 전체 보험수입료 대비 퇴직연금 비중이 가장 높은 롯데손보도 퇴직연금은 전체 보험수입료 1조7567억여원의 25.15%에 불과하다. 이는 롯데그룹과의 거래 외에 다른 기업이 납부한 금액도 포함된 수치다. 당연히 계열 기업집단이 몰아준 퇴직연금 비중은 법정 기준 30%에 못 미친다. 심지어 현행법에서 규정하는 과세 대상 총 매출액은 보험수입료 외에 기타 필요경비, 잡수입 등까지 모두 포함하도록 돼 있어 일감 몰아주기 비중은 더 작게 계산된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지금 상태로는 기업집단이 퇴직연금 전체를 계열 금융회사에 밀어줘도 과세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면서 “과세대상 기준 매출액 범위를 보험수입료만으로 좁히는 등의 관련 법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제대로 하기 위해 과세 대상 자체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은 그룹 내부 거래로 얻은 이익이 전체 매출액의 30%를 초과했다면 30% 초과 부분만이 아닌 전체 거래를 비정상거래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