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군중의 힘’ 위험한 유행… 중동·亞 혼란속으로
입력 2012-09-20 21:47
거대한 군중의 힘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의 반일시위, 이슬람권의 반미시위는 중동과 아시아의 정세를 혼란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지난해 세계 경제의 심장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OWS)’ 시위, 즉 월가점령 시위는 유럽을 거쳐 한국의 서울 여의도까지 이어졌다. CNN 일본특파원을 지낸 프리다 기티스는 “국내 상황과 외교가 뒤섞인 군중의 정치는 위험한 유행”이라고 지적했다.
◇폭력 사태 극복할까=이슬람권의 반미시위는 미국 정부와 무관한 17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에서 시작됐다. 이 영상이 예고한 2시간짜리 영화는 공개된 적이 없다. 그동안 서방이 이슬람 문화를 폄하해온 사실이 더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군중심리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11일 리비아 벵가지에서는 테러 조직이 군중시위를 악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미 대사를 숨지게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샤디 하미드 선임연구원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랍의 봄 시위 때 민주화를 지지했었다”며 “만약 카다피가 리비아에서 추출되지 않았다면 스티븐스 대사가 숨지는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이 퇴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일시위도 마찬가지다. 지난 18일 시위에는 일부 참가자들이 마오쩌둥 사진을 들고 나왔다. 마오 시대 문화대혁명의 악몽을 연상한 중국 정부는 다급히 시위를 규제하고 폭력은 엄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의 반일시위는 예년보다 규모가 작지만, 교과서 문제나 해상 충돌 같이 정치적으로 봉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영유권 분쟁이어서 무력 충돌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차기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부주석이 군중을 더욱 강력하게 규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OWS 시위는 방향을 잃고 있다. 지난 17일의 1주년 기념 시위는 열기가 크게 식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리스트 앤드루 로스 소킨은 “OWS는 뚜렷한 목표도 지도자도 정치력도 없어 월가의 대형은행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며 “고작해야 현금카드 수수료를 올리지 못하게 한 것이 가장 큰 성취였다”고 비꼬았다. 문제제기에는 성공했지만 해법은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 질서 변화 요구=군중 시위대가 제기한 문제는 하나 같이 세계 질서의 핵심적인 가치를 겨냥하고 있다.
반미 시위는 이슬람 문화 존중과 표현의 자유 보장이 양립 가능한지를 묻는다. 반일 시위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상처를 청산할 의지가 있는지 일본과 미국을 추궁하고 있다. “우리가 99%다”라는 구호로 경제적 양극화를 지탄한 OWS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규모 시위가 이뤄진 계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소셜미디어가 군중을 엮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된다. 구글의 중동담당 임원인 와엘 고님은 이를 ‘혁명2.0’이라고 명명했다.
미국·일본·중국과 아랍의 봄을 경험한 중동 국가 등이 권력 교체기에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기티스는 “정치·종교 지도자들은 언제든 추종자들을 움직일 수 있다”며 “아랍권에선 이슬람과 세속 정치의 권력 관계를 두고 역사적인 변화가 벌어지는 시점이고, 중국 지도부도 정권 교체기를 맞아 애국심을 조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법은 없나= 거리에 나온 군중은 이미 달라진 세계를 반영하고 있고 또 더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아라비야뉴스는 20일 “아랍과 동아시아에서 빚어지는 혼란을 민주화의 실패라고 결론 짓는 것은 부당하다”며 “오히려 군중이 쟁취한 정치적 자유를 마치 서방이 선물한 것으로 여기고 서방의 규율을 따를 때만 민주주의를 허용할 수 있다고 보는 외부의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영문일간 파키스탄옵서버도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의 시대는 이미 밝아오고 있다”며 “혼란과 지체는 있을 수 있어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퇴행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가 답이라는 것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