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차정식] 약물 권하는 사회

입력 2012-09-20 18:46


프로포폴이라는 향정신성 약물을 투약한 죄로 한 여성 연예인이 며칠 전 구속됐다. 이 마약 물질은 항간에 ‘우유주사’라고 알려진 것으로 얼마 전 어떤 의사가 자신의 내연녀에게 과다 투약하여 죽게 만든 엽기적인 사건 때 잠시 여론을 탔다. 미국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사망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도 이 약물의 과다투입 때문으로 알려졌다. 어디 프로포폴뿐이겠는가. 한때는 청소년의 본드 흡입이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억압적인 가정과 교육 현실을 망각의 저편으로 돌리고 약물을 통해 환각의 세계로 도피하려는 그 딱한 사정은 적잖은 염려와 동정을 자아냈다. 이따금 불거지는 연예인들의 대마초 사건이나 일부 상류층 인사들의 히로뽕 집단 투약과 환락 파티의 소식도 기상천외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환각세계로 도피는 나쁜 선택

한 보도에 의하면 이 땅에 마약중독자가 3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치료를 위한 재활프로그램이 운용되는 곳은 고작 4곳이고 재활기관을 갖춘 병원도 전국에 19군데에 불과하다. 치료를 자청하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지난 5년간 마약성 약물의 유통량은 5배나 증가했다.

왜 이렇게 약물로 휘청거리는 사회가 되었는가. 매일 평균 42.6명의 세계 최고 자살률이 증명하듯, 사는 게 괴로워서였을 것이다. 두 계통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일용할 양식조차 넉넉히 구하기 어렵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갖추며 살기 어려워서 그 고통과 슬픔을 잊고자 약물이 주는 인공적 안락함 속으로 도피한다. 또 다른 부류는 현실의 밋밋한 권태감을 견딜 길 없어 제 몸으로 더욱 강렬한 쾌감을 주는 욕망의 실험을 감행하고자 한다.

삶의 지나친 결핍과 과도한 잉여가 우리 사회의 휘청거리는 비탈에서 약물을 권한다. 하나님의 풍성한 창조 선물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양극화한 생명세계의 파행이 허무주의와 쾌락주의를 빌미로 약물이라는 중독성 도피처를 찾게 만든다. 그러나 그 귀결은 생명의 파멸이지 풍성한 생명이 아니다. 약물을 빙자한 현실 도피는 삶의 책임을 저버릴 뿐 아니라 온당한 누림의 권리조차 앗아가는 나쁜 선택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삶의 원형은 에덴동산의 모델에 비추어 99%의 향유와 1%의 금기로 짜여 있었다. 그 최대의 향유는 그 동산에서 나는 모든 실과와 채소를 맘껏 채집하여 양식으로 취하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 최소의 금기 역시 하나님과의 언약을 표상하는 선악과나무의 실과를 취하지 않는 수준의 약소한 규제였다. 그것은 과잉과 결핍을 넘어선 삶의 정상적인 누림을 보장하는 약속이었다. 실낙원 이후, 땅에서 땀 흘리며 수고해야 먹고사는 빡빡한 형편에서도 하나님은 관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별한 절기에 그들의 십일조로 ‘포도주’와 ‘독주’를 사서 함께 나누며 즐김으로써 육체노동의 고역을 달래줄 진정제를 약물이 아닌 음식의 차원에서 허락하신 것이다. 전도서 기자는 일상의 노동에서 누릴 만한 소박한 향유의 대안으로 아내와 더불어 먹고 마시는 복락을 제안했다. 이것이 지나쳐 맑은 정신을 잃고 방탕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디모데의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인 포도주를 약처럼 쓸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소박한 향유의 삶 추구해야

약물 권하는 사회는 병들고 억압적인 사회이다. 거기에는 애꿎은 육체를 약물로 강박하여 그 감각의 쾌락을 인공적으로 극대화하는 좌절과 불안의 심리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이를 조장한다면 그 체계의 주역들이 심각하게 회개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동참하는 다수의 방조자들 역시 무책임하지 않다. 절제와 나눔의 미덕으로 영원을 사모하며 소박한 향유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그 바람직한 대안이다.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