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요리사의 마음
입력 2012-09-20 18:46
추석을 앞두고 한 떡집에서 광고책자를 보내왔습니다. 소담하게 담긴 색색의 예쁜 떡과 한과 사진들을 보니 그림의 떡이지만 명절 기분이 납니다. 그런데 책자 한쪽에 적힌 의외의 문구가 눈길을 끕니다.
‘저희는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떡집 광고 문구 치고는 꽤나 거창하다 싶기도 하고 생뚱맞다 싶어 웃음이 나오려는 순간, 조금 아래쪽에 적힌 또 다른 문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르게 만들기, 정성껏 만들기, 열심히 만들기, 새롭게 생각하기.’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떡에 새로운 옷을 입히고 남다른 맛을 더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치열하게 고민하고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떡을 빚는 주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송편의 모양이 색다릅니다. 홍시의 색과 모양을 한 송편, 잘생긴 알밤 같은 송편, 보랏빛 코스모스 송편까지. 풍요로운 가을이 그대로 느껴지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몇 년 전에 본 ‘런치의 여왕’이라는 일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이 사는 낙인 여주인공이 작은 양식당에 들어가 오므라이스를 먹습니다.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천상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주변은 온통 밝고 따스한 빛으로 가득 찹니다. 그녀는 세상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그녀를 바라보는 요리사들의 얼굴에도 똑같은 미소가 피어납니다.
떡을 만들든 오므라이스를 만들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먹는 사람의 만족, 작은 행복입니다. 그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기에 요리사들은 새벽잠 줄여가며 싱싱한 재료를 찾아 뛰고 몇 시간씩 불 앞에서 소스를 저어댑니다. 적당히 하면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그들에게 타협이란 없습니다. 열 시간 기다려야 하면 기다리고 천 번을 저어야 하면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최고의 재료를 쓴다 한들 조리법을 지키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 없는 법입니다. 맛이란 것이 사람의 마음처럼 잔재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정치인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잔재주 부리지 않고 우직하게 제 맛을 찾아내는 요리사처럼 타협하지 않는 진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요리를 먹는 손님의 얼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의 만족한 웃음에서 일하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 적어도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은 그런 분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