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영 (15)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학문보다 뛰어나다!

입력 2012-09-20 18:36


“나이가 들어 공부하니 힘들어요. 듣고 돌아서면 까먹네요. 해영씨도 공부하기 힘들지 않아요?”

같이 공부하던 50대 초반의 김 집사님이 물었다. 나약대학교에는 만학도(return student)전형이 있어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모여 공부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했거나 가정을 꾸리다 공부하러 온 사람들은 수업을 따라가느라 매일 고군분투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쉬엄쉬엄해도 됐다. 하지만 공부가 쉽다고 얕잡아 보며 대강대강 할 수 없었다. 몸에 밴 습관이란 무서운 법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성공의 바탕은 역시 그 일을 한 사람에게 달렸다.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했는지가 중요하다. 전혀 대책 없이 도착한 미국에서 성공적인 유학생활이 가능했던 것 역시 체화된 성실함과 노력 덕이 컸다. 이는 한국, 일본, 보츠와나를 거쳐 미국까지 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십대 시절 나는 이미 국내외 기능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딴 경험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최선의 정점이 어느 정도인지 느낌으로 안다. 나는 금메달을 따려고 노력하기보단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공부도 그렇게 했다. 공부에도 매번의 과제에서 요구하는 최선의 정도가 있다. 나는 무엇보다 배우는 과정에서 진지하고 깊이 있게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다.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미국의 순수예술과 관련된 박물관을 방문하고 소감문 두 장을 써서 제출하시오.”

교양수업에 나온 과제물이다. 뉴욕에는 박물관이 널렸다. 이 주제에 맞는 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만 가도 이 과제는 거의 해결된다. 하지만 그곳보다 더 주제에 맞는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다른 곳을 간다. 갔더니 소감문을 쓸 만한 소재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곳을 한 번 더 간다. 세 번째 박물관을 둘러보면 나만의 생각으로 소감문을 작성할 수 있는 재료가 생긴다. 이렇게 해서 써 낸 두 장에 교수님은 만족해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교수님이 만족하기 전에 내가 먼저 과제에 만족할 수 있다. 물론 항상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할 순 없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다른 누구보다도 내 마음에 들기까지 최선을 다했다. 특별히 나약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주님의 선하신 계획이자 인도하심이 있었다.

나약대학교는 ‘Christian and Mission Alliance(C&MA)’ 산하의 교육기관으로 A.B. 심슨박사가 선교사를 배출하기 위해 1882년 뉴욕 맨해튼에 세웠다. 교육과정에는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성경 관련 과목이 포함돼 있다. 내 전공은 사회복지학이었지만 교육과정 덕택에 기독교와 신학과 관련된 과목을 자연스럽게 수강했다. 수업을 들으며 보츠와나에서 독학으로 익히고 배운 신학지식과 경험을 이론화할 수 있었다. 이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와 그 땅에서 함께 일하신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배울수록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14년 동안의 경험이 마치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완성된 그림으로 만들어져 갔다. 만약 내 경험에서 신학적으로 모순된 점을 발견했으면 매우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이 과정으로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학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과 공부할 기회도 많았다. 대부분 이십대 청년이었는데 공부에 대한 목적이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세상이 학교며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 선생’이라는 믿음 아래 삶에서 배움을 터득해 왔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철학이 거의 없다는 게 매우 안타까웠다.

억지로 하는 공부와 좋아서 하는 공부는 결과에 있어 엄청나게 다르다. 내 경우는 스스로 좋아서 한 공부였다. 더 나아가 즐기는 정도였다. 얼마나 공부하기를 원하였던가! 이 때문에 나는 공부를 열심히, 즐겁게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