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안철수 후보 출사표에서 빠진 것

입력 2012-09-20 18:45


“정치행로 불분명하고 정책공약 미진하면 완주 의사 없다는 오해받을 수 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19일 대선 출마 회견은 이채로웠다. 정치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정치와는 거리가 먼 구세군아트홀을 장소로 골랐다. 도전자의 목소리는 가늘고 약했으며, 확신에 찬 사자후가 아니라 마치 이웃에 이야기를 건네듯 ‘조근조근’ 했다.

함께 등단한 인물들도 대부분 정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소설가 조정래씨, 김민전 김형기 김호기 교수, 변호사와 사업가. 기성 정당의 대선 후보 선출이 당원들이 운집한 전당대회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는 것에 비하면 단출하다 못해 초라할 지경이었다.

안 후보가 던진 출사표에는 기존 정치에 대한 경고가 가득했다. 자신들이 만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라며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절망했다”며 간접화법으로 정치에 대한 불만을 전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국민들의 정치 쇄신 열망을 실천하기 위해 대선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보면 그의 출사표는 그저 도전장이 아니라 마치 쿠데타 선언과 같은 셈이다. 비록 군 인사는 아니지만 비 정치인이 최고 정치권력 장악에 나섰다는 점에서는 같다. 권력 쟁취 수단이 군사력이 아니라 정치인을 능가하는 지지율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안 후보가 밝힌 정견에는 정치 개혁의 청사진이 없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에 있긴 하지만, 잘못 들추기만 있고 대안 제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안 후보가 선거과정에서부터 정치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며 흑색선전 같은 낡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는 기존 정당의 후보들도 내놓은 약속이다. 진정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 정치 쇄신 열망을 받들겠다는 후보치고는 참신성이 떨어지고 빈약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그가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과 함께 증명하려 한다”면서 제안한 ‘진심의 정치’도 너무 추상적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이번 대선전 승패를 가를 만큼 결정적인 후보단일화 문제에 모호한 태도를 취한 점이다. 안 후보의 출사표에는 완주에 대한 대국민 약속이 전혀 없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지금까지 몇 번 직업을 바꿨지만 도중에 그만둔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번도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로 한 이상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이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후보 단일화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그는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혁신, 국민의 동의 등 두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두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의 단일화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는 단일화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안 후보는 두 조건이 충족됐는지 여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며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아 마음먹기 따라서는 언제든 야권 후보 단일화나 민주당 입당 등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 후보는 기존의 제3후보들과 입지가 다르다. 1997년 조순 후보, 2002년 정몽준 후보, 2007년 고건 전 총리 등도 대안 후보로 각광을 받았으나 완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안 후보처럼 1년 가까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지 못했다.

안 후보가 제대로 정치를 하려면 먼저 독자 정당이든 야당 입당이든 자신이 염두에 둔 정치 행로를 국민들 앞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 이번 대선 승리가 목표라면 속히 차별화된 정책과 비전을 내놓고 다른 후보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말씀 듣는 국민’이 아니라 ‘같이 일할 사람’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목표가 불투명하고 정책 공약에 소홀하다간 기존 정당에 들어가려는 의도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이 경우 안 후보의 정치는 이미 절반은 실패한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