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황태순] 박근혜 대선 후보의 한달
입력 2012-09-20 18:45
한 달이 지났다.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 한 달이 됐다. 박근혜의 대통합행보는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봉하마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고, 20대와 소통을 위해서라면 찢어진 청바지라도 입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정말 박근혜가 바뀌나보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인혁당 문제를 두고 그의 역사관에 대한 의문과 혼선이 야기되면서 박근혜는 바뀌지 않았다는 한계를 절감한 한 달이 되고 말았다.
바람 잘 날이 없다. 박근혜의 최측근인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이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현기환-현영희의 공천스캔들을 잊을 만하니까 또 부패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친박연대 출신 송영선 전 의원도 뒤를 이었다. 인혁당 유가족에 대한 사과를 두고 당의 두 대변인이 엇갈린 말을 했고, 박심(朴心)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한 대변인은 사표를 던지고 두문불출이다. 김종인의 국민행복특위와 이한구의 원내대표부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오늘 현주소는 그야말로 봉숭아학당 수준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박근혜 혼자 열심히 뛰고 있다. 참모들은 그저 박근혜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방송사에서 출연을 요청해도 혹시 말실수하여 찍힐까봐 손사래를 친다. 일선 사단장 격인 현역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대부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을 지고 있다. 왜 움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들도 볼멘소리로 항변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요청도 지침도 없는데 그냥 벌판을 헤매고 다니라는 말이냐고. 감나무 아래서 입 벌리고 앉아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꼴이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을 하지 않으니 쓴소리든 단소리든 할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지도자인 박근혜의 뒤를 좆을 뿐이다. ‘박근혜는 무오류’라는 위험천만한 기류가 새누리당을 뒤덮고 있다. 2004년과 2012년 두 번의 총선에서 붕괴 일보직전의 당을 구했다는 신화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박근혜의 카리스마적 판단력에 대해 의심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고뇌에 찬 결단은 지도자의 몫이고 그저 그 결정에 따르면 된다는 ‘비서정치문화’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이단자가 될 뿐이다.
과(過)부하가 걸렸다. 박근혜는 마치 자전거 바퀴의 중심축과 같다. 모두가 허브(hub)인 박근혜를 향해 바퀴살마냥 산개되어 있다. 권한과 책임의 수직적 배분과 역할의 수평적인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은 희한한 모습이다. 협력과 효율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모든 것을 박근혜 혼자서 떠맡아야 한다. 박근혜도 초인(超人)은 아니다. 당연히 과중한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대체할 방법이 달리 없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 모두가 박근혜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결과인 것을.
정말 바뀌어야 한다. 주연배우가 제작과 기획 심지어 감독까지 도맡아 무슨 걸작이 나오고,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대작을 만들어내겠는가.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는 법이다. 아랫사람이 무능하다는 것은 지도자가 영 시원치 않다는 방증이다. 박근혜가 정말 대선에서 승리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면 본인의 이름과 얼굴 빼고는 다 바꾸어야 한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아버지가 아니라 전직 대통령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인간에 대한 원초적인 불신을 접고 모든 것을 위임할 때 캠프의 컨트롤타워 기능도 작동을 시작하고 복지부동인 조직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직도 시간은 있다. 무려 89일이나 남았다.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하면서 박근혜에게도 마지막 변신의 기회, 승리의 기회가 다가왔다. 이제부터 본격적 출발이라는 초심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창조할 수 없다.
황태순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