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계 이단아’ 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눈으로 보는 음향 선사하겠다”

입력 2012-09-19 10:56


‘국악계의 이단아’ 원일(45)이 국악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국악계를 ‘혁신 없고 고여있는 물’이라고 비난했던 그가 국립국악관현악단 최연소 예술감독이 된 것이다. 그의 취임 후 첫 정기연주회인 ‘新, 들림’이 21, 22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진다.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원 감독을 만났다. “예전엔 이단아를 자처했다. 20∼30대에 바라본 국악계는 너무 보수적이고 재미가 없었다. 예술의 본질은 전통을 파괴하는 것인데 새로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곡자이자 지휘자이며 피리와 타악기 연주가인 그는 1993년 ‘푸리’라는 타악그룹을 만들어 활동했다. 영화 ‘꽃잎’ ‘아름다운 시절’ ‘이재수의 난’ ‘황진이’로 대종상 영화음악상을 4회나 수상하며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2003년에는 국악에 실험적 전자음악을 접목시킨 앙상블 ‘바람곶’을 창단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거문고 가야금 대금 등 한국악기가 훌륭하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에 올인했었죠. 덴마크에서 열린 월드뮤직엑스포에서 한국음악으로는 처음으로 ‘바람곶’이 개막연주도 했었고요.” 그렇게 10여 년 간 국내외무대를 종횡하다가 지난 3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악관현악단이 서양문화 도입 과정에서 엉겁결에 탄생한 것이라며 ‘국악관현악단 무용론, 체질개선론’을 내세웠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예술감독행을 결정한 데는 전임감독인 가야금 명장 황병기 선생의 영향이 컸다. “황 선생님이 예술감독을 할 때 한 작곡가에게 전폭적으로 전 곡을 맡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 누가 감독이 되는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맡는다면 진검승부를 펼쳐보리라 결심했다.”

그가 처음 부임하고 나서 가장 문제라고 느낀 것은 각각의 악기 소리가 효과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 때문에 음향전문가인 이돈웅 서울대 작곡과 교수를 연습에 참여시켰다. 소리를 위해 연습실 방향을 아예 통째로 바꿨다. 위로 퍼져나가는 소리를 가진 악기, 밑으로 깔리는 소리를 가진 악기 등 각 악기의 특성을 살려 재배치했다. 그는 “지휘자의 귀는 곧 관객의 귀다. 음향이 어떻게 들리며 또 어떻게 들려야하는지를 섬세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온 후 연습의 밀도가 달라졌다. 단원들에게 실전처럼 연습하자고 강조한다. 그는 “여기가 당신들 직장이고 가장 중요한 곳 아닌가. 목숨 걸고 하라. 연습할 때도 진지하게 해라”고 다그친다. 단원들에게 “우리나라 국악관현악단 중 누가 최고인가. 쉽게 말할 수 없나. 우리가 당연히 제일 잘 해야하는 거 아닌가. 국립인데”라는 말도 자주한다.

“객석에 있는 관객을 잘 보세요.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지요. 지치고 우울한 일상에 큰맘 먹고 공연 보러 왔거든요. 그런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공연은 정말 짜증나지요. 누가 제발 나를 흔들어줬으면 하는데요.”

그에게 이번 공연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국악이 들을 만 한거네. 옛날하곤 다른데’ 이 정도만 느껴도 성공이지요. 관객에게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조용히 잡념 없이 들으면 분명히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공연 첫 곡은 대취타를 재해석했다. 단원들이 차례로 악기를 들고 등장해 관현악단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눈으로 보는 음향을 만나게 된다. 해금과 피리의 명인인 김영재와 정재국의 연주도 들을 수 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