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본질은 재벌개혁이 아니다”…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 주장

입력 2012-09-19 19:12

“재벌 개혁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아니다. 대기업의 사업 다각화와 순환출자 등을 비판하는 것은 역사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장하준(49)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19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 회의에 초청돼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인 그가 대표적 재벌기업인 삼성에서 강연을 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강연 내용 또한 여느 진보 경제학자들의 반재벌적인 주장과 달리 균형감 있는 견해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장 교수는 “일부에서는 재벌이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다 만든다고 비난하는데, 사업 다각화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다 있는 현상”이라며 “소위 ‘핵심 역량’만 강조하는 것은 삼성은 아직도 양복과 설탕만 만들어야 하고, 현대는 도로만 닦아야 된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업 다각화에 기업의 성장 의지 외에도 정부의 ‘떠맡기기’가 작용했던 점을 언급하며 “과거에는 지주회사 설립과 교차소유가 금지됐기 때문에 순환출자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이 커 온 과정을 무시하고 지금 와서 하루아침에 제도를 뜯어고친다 해서 경제민주화가 될 일도 아니다”고 강조하며 “그런 측면에서는 나는 점진론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물론 장 교수는 삼성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그동안 국민들의 지원 위에서 큰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문한 뒤 “대기업은 경제민주화 논의가 왜 나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주주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타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가 이런 주장을 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1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의 싱크탱크인 담쟁이포럼 강연회에서도 “경제민주화는 재벌 규제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통해 이뤄진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들이 장 교수에게 글로벌 기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등 한국경제에 대해 의미 있는 강의와 문답이 오갔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사장단회의 강사는 통상 3∼4개월 전 미리 섭외하고 확정한다”며 “다양한 시각을 공부한다는 차원에서 장 교수가 생각하는 경제의 지향점에 대해 들어보는 게 사장단에게 좋겠다는 판단에서 초빙한 것”이라고 전했다.

권혜숙 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