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영 (14) 학비·용돈에 게스트룸까지… 도움 손길 물밀듯

입력 2012-09-19 21:24


대학은 가을학기부터 입학하기로 결정됐다. 문제는 학비였다. 나는 입학 전인 2004년 7월에 열린 시카고 한인선교대회본부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워싱턴에서 이영호 이영숙 집사님 부부가 뉴욕으로 날 찾아오셨다. 이 두 분은 굿호프 기술학교를 위해 기도하던 소규모 그룹 리더였다. 주일예배를 함께 드리던 중 이영숙 집사님께서 내게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선교사님, 학비걱정은 마세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일주일 후에 알게 됐다. 한 학기 학비에 해당하는 5000달러와 편지가 집사님이 계신 워싱턴에서 날아왔다. 편지에는 한국에서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해 학비로 보내니 열심히 공부하라는 당부의 말이 적혀 있었다. 집사님이 출석하는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간증했을 때 유학 온 이야기를 듣고 내게 학비를 보내준 것이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보내주신 학비를 들고 나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이는 앞으로 일하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내가 요청한 적도 없고, 날 처음 본 분들이 은혜를 베풀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순전한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과 그분들이 베푸는 은혜 덕택이다.

첫 학기 등록을 무사히 마치고 4년간의 유학 비자를 받았다. 2004년 8월말 나는 드디어 대학생이 됐다. 시카고 선교대회 이후 후러싱 지구촌선교교회의 고석희 목사님은 “해영 선교사,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지 말고 교회에 가세요”라며 살 곳을 마련해줬다. 마침 교회 안에는 게스트룸이 있어 그곳이 내 거처가 됐다.

가을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후, 도움의 손길이 또 한번 찾아왔다. 텍사스 휴스턴 서울침례교회의 이수관 목사님이 연락을 했다. 이 교회에는 보츠와나 선교를 오랫동안 후원한 그루터기 목장이라는 소그룹이 있었다.

“선교사님, 보내는 금액이 일정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공부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매월 오백달러씩 보내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루터기 목장은 미국에 갓 이민 온 청년들로 구성돼 있다. 이 청년들이 꼬박꼬박 모아 보내준 귀중한 헌금이 내 생활비가 됐다. 이번에도 내가 요청하기 전에 교회는 내 형편을 이해하고 해결해 줬다. 이들의 지원 덕분에 2학년부터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러 장학금을 신청해서 받아 학비를 보충해 나갔다.

공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학생으로서 학문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매일이 기적이고, 행복이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다니!’

학교나 지하철 안, 교회에서 나는 매 순간 감격하고 감동했다. 공부가 선교라고 믿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이런 일들이 단순히 노력한다고 이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일까.

은혜도 분에 넘치면 의심이 생기는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공부하다가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터졌다. 내가 가르친 보츠와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공부를 잘 마치고 꼭 돌아와요’라고 했던 부탁의 소리도 들렸다. 그때 내가 하는 공부는 바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미국에 살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나를 맡기신 것이다. 내 형편을 헤아려 주머니와 가방에 돈을 넣어준 하나님의 사람들 도움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유학생활에 필요한 경비를 보내주셨다. 계산해 보니 모두 2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은혜가 너무나 크면 갚을 수 없다.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은혜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베풀 날을 기대하며 공부에 임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