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美 대통령 경제 점수… 경제 최악 상황 막았지만 ‘뇌관’ 여전… 성적 C+

입력 2012-09-18 18:39


‘완전한 재앙’인가. 아니면 70년래 최악의 불황을 ‘선방’한 것인가.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1기 ‘경제운영 성적표’가 핫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공화당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4년 전보다 살림살이 나아졌나요’를 핵심 선거구호로 내세우면서 양 진영 간에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이후 대불황(great recession)에 오바마 행정부가 얼마나 적절히 대응했는지에 대한 평가로 직결된 이 논쟁은 대선투표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점검해 본다.

◇“예상된 수준의 회복 속도”=2008년 9월 15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이번 대불황의 시작으로 본다면 만 4년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기간으로 따지면 3년8개월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경제지표는 좋지 않다. 특히 고용사정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을 빌리면 “모든 미국인들을 걱정하게 한다”. 실업률이 43개월째 8%를 웃돌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번 금융위기 이후 9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반면 현재까지 회복한 일자리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2012 회계연도의 예산적자도 1조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물려받은 이번 경제위기의 깊이와 폭을 감안할 때 예상된 회복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경제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다른 경기침체와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더욱 위험하고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로고프 교수는 800년간 66개국에서 발생한 경기침체의 원인과 양상을 분석한 책 ‘이번에는 다르다’의 저자다.

또 미국 경제가 회복궤도에 들어선 것은 맞으며 이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직후 시행한 7870억 달러 규모의 ‘경제회복 및 재투자’ 조치 등이 경제의 ‘자유낙하(free fall)’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친공화당 성향의 경제학자인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경제학자도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은 역사에 전반적인 성공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9일 보스턴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회복이 느린 것이 정부 때문이라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며 “정부가 곤경에서 경제를 구했으며, 그 비용이 막대하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훨씬 액수가 커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우선순위 혼동·상황 판단 미스”=하지만 취임 6개월까지의 대불황 대응과 이후의 경제운용을 구분, 후기의 경우 정책우선순위 결정과 상황 판단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러 경제 회복 속도를 늦추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경제회복에 총력을 집중해야 할 때 정치적 의제의 성격이 강한 건강보험개혁법(ACA·오바마케어)을 추진한 것을 실책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시기가 중요한데 경제가 겨우 살아나려는 때에 고용에 부정적이고, 불확실성을 키우는 의제를 추진해 행정력을 분산시켰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개혁법에 따라 고용주는 종업원의 보험료 부담을 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게 돼 고용 창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로버트 사무엘슨은 전 국민 보통 의료보험이라는 정치적 의제가 경제회복을 해치지 않고 실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분명히 오바마의 착오라고 비판했다.

경제예측업체 IHS글로벌인사이트의 나리만 베라베시 수석경제학자는 “백악관 산하의 초당적인 재정건전화 위원회가 마련한 ‘심슨-보울스 채무 감축안’을 오바마가 수용하지 않은 점이 결국 ‘재정 절벽’으로 불리는 극단 대립으로 이어졌다”며 “이러한 대립의 심화는 기업과 소비자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오판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코노미스트 등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크리스티나 로머는 당초 미국이 완전고용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1조80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래리 서머스와 정치자문역들이 의회의 반발 등을 우려해 7870억 달러 규모의 1차 경기부양안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2월 의회를 통과한 이 경기부양안에 승인할 때 ‘이것이 충분한지는 지켜봐야 하며 경제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2차 부양안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고리’를 걸어놓았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그는 1차 부양안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경제지표가 이어지는 데도 낙관론으로 일관했다.

정치적 용의주도함의 부족이든, 사태의 심각성을 오판한 것이든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위기 과정을 일관되게 관리하지 못했다는 빌미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첫 임기 학점은?=워싱턴포스트의 로버트 사무엘슨은 이러한 점을 감안, 오바마의 경제운영 성적은 ‘보통’이며, 학점으로는 C+라고 밝혔다. 진보 성향 블로그 ‘이성의 목소리’ 운영자인 경제학자 제이슨 스코어스도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오판한 점 등을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C+를 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경제 지표가 암시하는 것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실제 경제 운영 성적은 좋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위기 대응에 A-, 경기부양 조치는 B+를 매겼다. 그러나 주택시장, 노동시장 대응에 대해서는 각각 C+를 줬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